한국한문학이 지닌 다층성의 한 구현, 통속성

Abstract

근대에 들어와서 문학과 예술을 논할 때 일반대중의 취향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고 흥미 본위의 특성을 통속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근대 이전의 문화지식층이 주로 담당하였던 한문학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근대적 의미의 통속성을 운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국한문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문언어법의 한문을 사용하고 韻語를 익힌 토대 위에 창작활동을 하여야 하였으므로, 구어 사용의 대중을 독자층으로 확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한국학문학의 담당층이었던 사대부 지식인은 義理之學을 우위에 두고 정치이념을 구현하는 것을 第一義로 삼았으므로, 시문의 형식미 자체를 추구하는 文章之學과 과거 합격을 위해 연마하는 科擧之學은 저속한 공부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백성들의 삶을 세세하게 묘사하거나 개인 정감을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의리지학에 연계되어 있거나 연계되어 있다고 확신될 때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근세 이후 통속의 개념이 상업성이나 복제성, 저급성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사 계층의 분화와 더불어 중하층 백성들과 함께 ‘생활의 장’을 살아나간 寒士들이 계층적, 정치적 이념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추구하였다. 그들은 大小文字를 담당하는 館閣文人도 아니고, 동호인 집단에서 인정받는 문예적 취향의 文人도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문자 활동에 대해 자조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찾아나가야 하였다. 이들의 문학은 경국문장이나 화국문장을 정점에 두는 사대부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의 정치성과 이념성을 탈각한 면에서 보면 그 나름대로 순문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한사들의 문학세계는 행문의 관습에서는 문언어법을 지키면서도 생활세계에서 활용된 변격한문을 도입하여 중층적인 표현체계를 활용하였다. 본고는 조선후기의 한문학에 대두된 통속성을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 經國文章 혹은 華國文章이라는 계층적,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일탈되어 민간생활의 場에 밀착하는 특성. ⓑ 문언어법과 운어 형식의 구속성을 벗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던 변격한문의 문학적 활용. ⓒ 운자 사용의 관습성이 강하였던 祭文 등의 양식에서 寒士들이 無韻의 형식으로 감정을 직서하는 방식의 채용. 조선후기 한문학에서 소재, 주제사상과 문체의 측면에서 대두된 통속성은 근세 이후 상업성이나 복제성, 저급성이란 의미에서의 통속성과는 달랐다. 하지만 한문학이 추구한 개인적․인격적 자기수양과 책임윤리의 실현이라는 본령에서 벗어나 생활의 장에 밀착한 새로운 미학을 지향하였다는 점에서 정통 한문학과는 다른 통속성을 드러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