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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회화작품에 나타난 취병(翠屛)의 특성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Chuibyong(翠屛: a Sort of Trellis) in Paintings of Late Joseon Dynasty

Other Titles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Chuibyong(翠屛: a Sort of Trellis) in Paintings of Late Joseon Dynasty
Authors
정우진심우경
Issue Date
2013
Publisher
한국전통조경학회
Keywords
Joseon Palace; Donggwoldo; Gathering of Scholars at the Western Garden; Literati Garden; Korean Folk Painting; 조선 궁궐; 동궐도; 서원아집; 문인정원; 민화
Citation
한국전통조경학회지, v.31, no.4, pp.1 - 21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전통조경학회지
Volume
31
Number
4
Start Page
1
End Page
21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05608
DOI
10.14700/KITLA.2013.31.4.001
ISSN
1738-236X
Abstract
첫째, 조선시대 회화자료 25종에 대한 분석 결과, 취병은 주로 사생활 보호를 위한 차폐시설과 부지의 공간을 분할하는 구획시설로 기능하였으나, 내적으로는 정원에 품격과 아취를 부여하는 소품으로 설치되었다. 특히 취병 주변으로 학, 사슴 등의 동물상 및 소나무, 파초, 대나무, 오동나무 등의 식물상과 괴석, 연못, 정자 등의 다양한 정원요소들이 나타났는데, 이것들은 이상적인 문인정원에 구비되어야 하는 일련의 조합으로 파악되었다. 둘째, 취병은 중국 고사(古事) 속 문인문화를 표상하는 관념적인 물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이미지는 고스란히 정원문화 속에 투영되었는데, ‘인물고사도 속 원림’을 모방․재현하는데 있어 취병은 중요한 경물로 사용되어 왔다. 셋째, 형태․기능 측면에서, 조선시대 회화 속에 나타난 취병들은 기본적으로 차폐 및 구획의 기능이 주요하였다. 사람 키를 웃도는 담장이나, 심지어 중국 대문 앞뒤에 설치되는 영벽의 높이까지 솟아 있기도 하여 공간적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취병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취병은 특정한 기능이나 입지상황 때문에 설치된 것보다는 당시 국내에 유행한 명대 문인문화의 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중국에서 전해진 서원아집도 등에 나타난 취병의 도상은 한양을 중심으로 부유층의 저택에서 재현되었는데, 취병을 통해 부귀와 문인의 기상을 표현하려 했던 초기양식이 궁궐 및 상류층의 주택에서나 조성될 수 있는 고급 정원요소로 전화되었다. 또한 19세기 중엽 이후 취병의 활용은 평민의 주거양식으로 확산되는 이른바 저변화의 양상을 보였으며, 이는 취병이 토착화된 전개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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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fe Sciences and Biotechnology > Division of Environmental Science and Ecological Engineering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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