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사회의 분화와 구야국의 성장Differentiation of Society in Pyŏnjin and Growth of Kuya
- Other Titles
- Differentiation of Society in Pyŏnjin and Growth of Kuya
- Authors
- 박대재
- Issue Date
- 2019
- Publisher
- 한국고대사학회
- Keywords
- Mahan; Chinhan; Pyŏnjin(Pyŏnhan); Kuya; Kaya; Lelang Prefecture; Daifang Prefecture; Wa; 마한; 진한; 변진(변한); 구야국; 가야; 낙랑군; 대방군; 왜
- Citation
- 한국고대사연구, no.94, pp.87 - 126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국고대사연구
- Number
- 94
- Start Page
- 87
- End Page
- 126
- URI
-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1653
- DOI
- 10.37331/JKAH.2019.06.94.87
- ISSN
- 1226-6213
- Abstract
- 진한 12국은 辰王에게 속해 있었고, 변진 12국에도 별도의 왕이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변진과 진한은 정치적 통속 관계에 의해 구분된 사회임을 알 수 있다. 김해 구야국은 중국군현과 왜를 연결하는 해상교역체계를 이용해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3세기 초 구야국은 포상 8국의 침공을 극복하고 함안의 안야국보다 우위에 있는 변진 12국을 대표한 왕으로 대두하였다.
하지만 3세기 중엽 이후 낙랑군-예맥-진한을 중심으로 한 육상교역체계가 부활되면서, 대방군을 중심으로 한 해상교역체계에 속해 있던 구야국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3세기말의 상황을 전하는 『진서』 동이전에서 변진이 따로 보이지 않고, 변진 12국이 진한에 속해 있다고 한 것도 이러한 변화상을 보여준다.
3세기말 이후 구야국은 중국과의 교섭대신 왜국과의 양자교역을 더욱 활성화시키면서 새로운 교역체계를 주도하였다. 김해지역 대형 목곽묘에서 출토된 외래(북방계·왜계) 유물을 통해, 구야국을 매개로 북방의 고구려(동예) 및 신라와 열도의 왜가 연결된 교역체계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세기말 이후에도 구야국은 대륙과 열도를 잇는 교역항을 가진 초기국가로 지속 성장해, 가야의 종주국(임나가라)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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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s - 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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