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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 서구 역사학의 분기점?1919 - A Watershed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Historiography?

Other Titles
1919 - A Watershed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Historiography?
Authors
최호근
Issue Date
2018
Publisher
한국사학사학회
Keywords
일차대전; 객관성; 역사주의; 구조사; 방법론적 혁신; the First World War; objectivity; Historicism; structural history; methodological innovation
Citation
韓國史學史學報, no.38, pp.240 - 267
Indexed
KCI
Journal Title
韓國史學史學報
Number
38
Start Page
240
End Page
267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1832
DOI
10.29186/kjhh.2018.38.240
ISSN
1229-7488
Abstract
일차대전은 서구 역사학계의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현상은 주도권 변동이었다. 19세기 역사연구의 대명사였던 독일 역사학계는 종전을 기점으로 지배적 지위를 상실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패전과 베르사유 강화조약은 독일 역사학계의 주 관심을 ‘개전책임론’에 한정시켰다. 둘째, 이로 인해 독일에서 자라나고 있던 사회경제사 영역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에 필요한 이론・방법적 모색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소실되었다. 다른 서구 국가들에서도 새로운 역사학의 출현은 더뎠다. 미국을 제외하면, 그 어디서도 역사의 오용과 남용을 초래한 역사가들의 참전활동에 대해 충분한 비판이 제기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국가・민족 중심의 패러다임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일차대전은 주목할 정도의 역사서술 혁신을 가져오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아날학파가 독자적인 학술지를 창간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방법론적 혁신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현실의 엄청난 충격과 방법론적 혁신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지체가 있었다. 이 점에서 볼 때, 일차대전 이후 10여년의 시간은 서구 역사학의 역사에서 하나의 막간극 같은 시기로 규정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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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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