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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함길도의 세전관하(世傳管下)Sejeon gwanha (Hereditary hired laborers) in Hamgil Province during the Early Joseon Era

Other Titles
Sejeon gwanha (Hereditary hired laborers) in Hamgil Province during the Early Joseon Era
Authors
김순남
Issue Date
2017
Publisher
한국사학회
Keywords
함길도 동북면; 여진; 편맹; 토호; 야인추장; 양민; 노비; 협호; 이시애 난; 세전관하(世傳管下); Northeastern Frontier District Hamgil Province; Jurchen; naturalized as Joseon commoner; local power holder; headman of barbarians (Jurchen); commoner; slave; hyeopho (people who were subordinate to their main family); Yi Siae Rebellion of 1467; Sejeon gwanha (Hereditary hired laborers)
Citation
사학연구, no.125, pp.197 - 228
Indexed
KCI
Journal Title
사학연구
Number
125
Start Page
197
End Page
228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2281
ISSN
1225-133X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 초기 함길도의 세전관하를 통해 조선 역사의 다양성을 통일적으로 승화시킨 발전 양상을 추적하고자 한 것이다. 조선의 동북방에 위치한 함길도에는 고려조 이래로 토착인과 여진인이 더불어 살았다. 때문에 이곳에는 고려․조선 원거인과 향화야인들이 어울려 살면서 형성된 독특한 사회습속들이 있었다. 이곳의 토호나 야인추장이 양민을 관하에 두고 사적으로 점유하면서 대대로 노비처럼 부렸던 세전관하도 그 하나였다. 세전관하는 양민으로서 국가의 역을 져야 했지만 군호를 이루지 않고 협호로 존재하면서 군역 자원에 충당되지 않았다. 조선 정부도 함길도의 이런 상황을 파악했지만 연원이 깊고 오래되어 나름대로 기능했기 때문에 일거에 추쇄하지 못했다. 세조대까지도 계속된 이 문제는 1467년(세조13) 5월 함길도에서 일어난 지방 반란인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해결의 방향이 정해졌다. 성종은 세전관하가 지방 반란의 물리력으로 기능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종래의 사적인 종속 관계를 끊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이에 국가가 군역 자원을 직접 파악하는 남방의 체제에 맞추어 함길도의 특수성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하면서 세전관하는 일체 추쇄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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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Culture and Sports > Division of Cultural Heritage Convergenc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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