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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조선 지방군제의 동요 - 牙兵의 형성 배경 -Disturbance of Joseon’s Local Military System during the 16th Century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the Ivory Troops (Abyeong)-

Other Titles
Disturbance of Joseon’s Local Military System during the 16th Century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the Ivory Troops (Abyeong)-
Authors
김순남
Issue Date
2015
Publisher
조선시대사학회
Keywords
아병; 아기; 수하병; 良少; 賤多; 군역; 피역; 群盜; 僧徒; 공천; 사천; 임진왜란; ivory troops (abyeong); ivory flag (agi); less commoners; more lowborners; military duties and corvée labor; groups of burglars; monks; public slaves; private slaves; Japanese Invasions of 1592
Citation
조선시대사학보, no.73, pp.229 - 262
Indexed
KCI
Journal Title
조선시대사학보
Number
73
Start Page
229
End Page
262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2770
ISSN
1226-5705
Abstract
본 연구는 牙兵의 형성 배경을 살핌으로서 조선 전기 지방군 체제가 동요하는 역사적 실상을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다. 아병은 大將이 있는 곳에 세워진 牙旗 아래 집결한 수하 병사였다. 아병은 15세기 조선의 지방군 병종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17세기에 정식 병종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6세기 조선에 해당되는 연산군~명종대의 사회적 상황에서 초래되었다. 16세기 조선사회는 양인보다 천인이 더 많은 良少賤多 현상이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역의 부담에 지친 조선 백성들은 양천을 막론하고 떼도둑이 되어 사회적 일탈 행위를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의 수령과 관찰사는 극도로 위협받았다. 그러자 이들은 휘하의 병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군액에 충정할 양인은 부족해졌지만 대신 군역을 감당할 만한 천인은 넘쳐났다. 결국 종래 군역의 대상이 아니었던 公私賤에서도 군사를 징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16세기 양천의 수가 역전되는 조선 사회의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속에서 군사적 변화가 모색되었다. 그 선상에서 16세기 말 ‘아병’이 형성되었다. 당초 피역민의 일탈 행위에 대처하기 위한 지방관의 수하 친병으로 기능했던 아병은 1592년(선조25)의 임진왜란을 통해 그 군사적인 의미가 특히 강조되었다. 그 결과 아병은 전란을 수습한 이후인 17세기에 지방군의 정식 병종으로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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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Culture and Sports > Division of Cultural Heritage Convergenc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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