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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拙藁千百』 譯註」 (7)-권1 「金文正公墓誌」의 분석을 중심으로-Cholgo Ch'onbaek: annotated (7)

Other Titles
Cholgo Ch'onbaek: annotated (7)
Authors
이진한김보광김규록
Issue Date
2014
Publisher
고려사학회
Keywords
졸고천백; 최해; 김태현; 김수; 삼별초; 전시문생; Cholgo Ch' onbaek; Choi Hae; Kim Tae-Hyun; Kim Su; Sambyeolcho; Jeonsi-munsaeng(king' s students)
Citation
韓國史學報, no.55, pp.299 - 350
Indexed
KCI
Journal Title
韓國史學報
Number
55
Start Page
299
End Page
350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428
ISSN
1229-6252
Abstract
「졸고천백」은 2권으로 된 최해의 문집이다. 최해는 주로 고려에서 활동하다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크게 현달하지 못하고 40세 정도에 은퇴하였다. 그는 대신 이제현, 이곡, 최문도 등 당대 최고의 문인과 교유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졸고천백」 중 권1의 15번째 글인 「김문정공의 묘지」라는 글의 특징을 살피고, 번역 및 주석의 작업을 하였다. 이 글은 고려후기의 인물인 김태현을 위한 묘지명이다. 1261년에 태어난 김태현은 1276년(충렬왕 2)에 과거 급제한 이래 1330년에 사망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기를 관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고려는 충렬왕과 충선왕의 重祚, 충선왕의 활동 및 토번 유배, 입성책동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건을 겪었다. 이러한 정치상황에 따라 그는 관직 경력 상의 부침을 겪었는데, 「김태현묘지명」에서 주목되는 몇 가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아버지인 김수에 대한 기록이 주목된다. 삼별초가 제주도로 들어가려 할 때 제주로 파견되어 이를 막으려다 전사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2) 김태현이 1280년에 충렬왕이 직접 선발한 시험에 합격하여, ‘전시문생’이라 불리면서 충렬왕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3) 그래서 충선왕이 1298년에 즉위하였을 때 그가 면직되었다는 사실 등 여타 기록에서 찾을 수 없는 경력을 이 묘지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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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s
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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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in Han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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