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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식과 시적비전의 상관성 - 오비디우스 번역가 클레망 마로의 “작가의 영예”에 관한 고찰 -La réciprocité entre la conscience de la traduction et la vision poétique - réflexion sur “l'honneur de l'auteur” chez Clément Marot, traducteur d'Ovide -

Other Titles
La réciprocité entre la conscience de la traduction et la vision poétique - réflexion sur “l'honneur de l'auteur” chez Clément Marot, traducteur d'Ovide -
Authors
손주경
Issue Date
2010
Publisher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Keywords
클레망 마로오비디우스변신번역작가의 영예번역의식시적 비전; Clément Marot Ovide métamorphose traduction honneur de l' auteur conscience de la traduction vision poétique
Citation
프랑스어문교육, no.35, pp.335 - 368
Indexed
KCI
Journal Title
프랑스어문교육
Number
35
Start Page
335
End Page
368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4579
ISSN
1226-3400
Abstract
근대 프랑스 시 형성에 있어서 클레망 마로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될 수 있다면, 그 이유를 그의 언어 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분명 그는 대수사학파 시인들의 인위적으로 공들인 시어에 비한다면 지극히 평이하다는 인상을 갖게 만드는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생기를 상실한 이전의 시어와는 다른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언어사용은 그가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시어의 발달에 상당히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의 평범한 언어 사용이 초래한 결함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언급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과 타인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 형성을 이 시인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이런 언어사용이 그가 이룬 시적혁신, 즉 시적 글쓰기의 기쁨을 독자와 공유한다는 목적의 실현에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독특한 시적 비전은 이런 언어 사용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무엇보다도 평범한 어휘의 사용을 통해 시적 ‘주관성’의 확립을 지향한 시인이었다. 1530년에 간행된 첫 시집 '클레망의 유년시절 L'Adolescence clémentine' 서문에서 이미 시인은 “작가의 영예”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동료들이여) 나의 이 보잘 것 없는 유년시절을 세상에 내놓도록 누가 더 부추겼는지 알지는 못한다. 헌데 거리에서 외쳐대고 책으로 출간된 그대들의 끊이지 않는 간청이나 불만들을 나는 듣게 되었고, 그것들의 상당부분은 정확하지도 않고 제대로 인쇄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작가>의 영예보다는 서적상에게나 더 이로울 뿐이다. 마로에게서 “작가의 영예”에 관한 주장을 들을 수 있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작품을 읽을 독자의 반응에 매우 민감했던 그에게는 과거의 시인들이나 동시대 시인들에 비해 자신이 더 뛰어난 작가임을 강조하고 그것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는 ‘저자의 작품(oeuvre de l'autheur)’, 즉 작가의 분신일 수 있는 작품을 세상에 소개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중세 서정시의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되는 프랑수아 비용의 작품을 직접 편집하여 출간한 이유도 이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시적소재로 삼은 비용은 마로에게는 주체적 시인의 전범으로 보였고, 따라서 비용 편집자로서의 마로는 비용의 표현을 낳은 ‘정신’을 독자에게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독자성을 상실한 채 궁정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개성 없는 작품을 생산하기 보다는 시를 유희의 수단으로 간주하던 시기에 시인을 사회적 종속에서 구해낼 수 있는 작품, 시인으로서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는 타인의 의도에 따르는 공적인 목소리를 되풀이하는 작가보다는 예술가로서의 자율성을 구가할 수 있는 존재로 남기를 바란 것이다. 자율적인 읽기와 자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 지배적인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는 자가 마로가 구현하려는 시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그의 번역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알려져 있다시피 마로의 '시편 Psaumes'(1542) 번역은 개혁종교의 사상을 널리 전파하려는 종교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의도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는 이 번역을 통해 자신의 이름마저도 널리 알리고 싶어 했던 것처럼 보인다. 신의 말씀을 기록한 '시편'에서 그는 신성한 목소리의 종속적 전달자로 남는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흔적을 신의 목소리와 함께 전달하려고 시도한다. 그가 시편 번역에서 작가로서의 권위를 얻었던 고대 작가들의 이름을 여러 차례 나열하는 것이나, 다윗의 불멸성이 세상의 원천이었음을 노래하면서도 그들의 지배적인 초월성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 증거가 된다. 무엇보다도 번역을 하는 자는 시인인 자기 자신이며, 신의 조화로운 목소리를 옮기는 자 역시 번역을 행하는 시인인 것이다. 번역에서 중요한 것이란 신의 노래를 전하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의 발현임을 그는 '시편' 번역에서 견지한다.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같은 베르길리우스의 ‘Publius Vergilius Maro’라는 라틴어 이름을 굳이 상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복음서처럼 진실한 내 이름에 대해 말하자면나는 그것을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예전에 로마 메세나들의 총애를 받은그는 마로(Maro)라 불렸다. 그래서 나는 나를 마로(Marot)라 부른다. 나는 마로(Marot)이지, 마로(Maro)가 아니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이 이름은 사라졌다. 따라서 마로의 '시편' 번역에는 자신의 주체적 위상과 타인의 소리를 대변한다는 사명 사이의 긴장감이 흔적으로 남아있으며, 그것을 통해 그는 작가의식의 세계라는 문을 열어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흔적이 결코 일회적이지 않음을 '시편' 번역보다 훨씬 앞서 이루어진 오비디우스의 '변신 Métamorphoses' 번역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이미 자기 이전에 여러 번에 걸쳐 번역이나 번안의 형태로 소개된 고대 시인의 작품을 그가 다시 번역한 이유와 여기에서 그가 지향한 번역의식을 시적 정신과 관련하여 살피고자 한다. 오비디우스 번역에서 그가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이며, 고대시인의 시적 사상이 시인으로서의 고유한 목소리를 확보하려한 그에게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시인 마로와 번역가 마로 사이에 놓인 친연성이 발견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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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French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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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N, Joo 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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