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의 전기에 형상화된 사랑의 형식과 그 역사적 의미

Abstract

이 글은 사랑을 주요한 서사적 동력이자 주제로 삼고 있는 나말여초의 전기문학을 대상으로 그 속에 형상화된 구체적인 사랑의 형식을 탐색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1절에서는 이 글에서 활용되는 사랑의 개념을 간략히 제시한 후 전기문학의 사랑 주제를 해석하는 기존의 관점들을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기적 사랑의 성격을 일반화하기에 앞서 작품 속에서 사랑이 발생하고 발전하는 구체적인 계기나 방식, 사랑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벽과 그러한 장벽에 저항하는 남녀 인물들의 행동양식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다음으로 2절에서는 전기나 지괴, 불교영험설화 등의 양식적․주제적 경향이 혼효되어 있는 나말여초 전기의 혼성적 성격을 한국적 전기문학의 초기적 특성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연구에서 나말여초 전기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혀온 「최치원」에 대한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나말여초 사회를 기준으로 두고 볼 때 이 작품이 형상화하고 있는 사랑이나 남녀관계는 그 역사적 전형성이나 심리적 현실성을 크게 획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다음으로 3절에서는 「조신」에 형상화된 사랑의 형식을 검토해 보았다. 우선 이 작품이 취하고 있는 꿈 이야기 형식이 사랑에 대한 방어와 재현이라는 모순된 요구의 타협 형식임을 지적한 후, 「조신」에 형상화된 사랑은 엄격한 내외법이 요구되지 않아 남녀 간의 돌발적인 사랑이 비교적 일어나기 쉽지만 동시에 신분내혼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처벌기제를 작동하고 있었던 신라 사회의 이중적 상황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가 사회적 장벽에 부딪혔을 때 사분이라고 하는 탈주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위험하고도 불온한 사랑을 바라보는 작가의 문제의식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4절에서는 「김현감호」에 형상화된 사랑의 형식을 검토했다. 우선 청춘남녀의 성과 사랑에 관대했던 신라 사회의 습속을 검토하고 충동적인 사랑 이후 오히려 주저해야만 했던 호녀의 행위를 신분과 성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호녀의 오빠들이 김현에게 보인 적대감을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친족집단 남성이 외부의 귀족 남성에게 보이는 적대적 반응으로 해석해본 후, 실현 불가능한 사랑임을 예감한 호녀가 스스로 희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논리와 이로 인한 김현의 죄책감의 문제를 논의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