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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혼돈록(餛飩錄)』에 대하여Research on Hondonnok written by Jeong Yak-yong

Other Titles
Research on Hondonnok written by Jeong Yak-yong
Authors
김언종안세현
Issue Date
2013
Publisher
한국실학학회
Keywords
다산; 정약용; 혼돈록; 여유당집(장서각 및 규장각 소장 필사본); 여유당전서보유; 사론; 시화; 언어문자; Dasan; Jeong Yak-yong; Hondonnok; the supplement of a complete book of Yeoyoodang(與猶堂全書補遺); complete book of Yeoyoodang(與猶堂全書); historic essays; comments on poems
Citation
한국실학연구, no.26, pp 351 - 403
Pages
53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실학연구
Number
26
Start Page
351
End Page
403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85948
ISSN
1598-0928
Abstract
본고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잡저류(雜著類) 저술인 『혼돈록(餛飩錄)』 현전본의 종류와 주요 내용을 학계에 소개하고, 이 저술이 지닌 자료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혼돈록』은 신조본(新朝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장서각과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여유당집(與猶堂集)』에 각각 수록되어 전한다. 또 1974년에 영인된 『여유당전서보유(與猶堂全書補遺)』 2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조목은 장서각본이 249개, 규장각본이 225개로 장서각본이 24개 더 많다. 보유본은 장서각본을 저본으로 하면서도 규장각본을 섞어 영인한 것이며, 영인 과정의 오류로 244개 조목만 수록되어 있다. 요컨대 장서각본이 규장각본보다 앞선 초본(初本)일 가능성이 높다. 『혼돈록』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이 저술은 다산이 1796년(정조 20) 초계문신으로 『사기영선』을 교정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전체적인 서술은 유배지에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혼돈록』 권4의 내용이 『아언각비』에 많은 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아, 『혼돈록』 저술은 적어도 『아언각비』가 완성된 1819년(순조 19) 이전에 마친 것임에 분명하다. 『혼돈록』은 총4권인데 권1ㆍ2는 모두 사론(史論)이며 권3의 전반부는 사론이고 후반부는 시화(詩話)이다. 권4는 언어문자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전체 249개 조목 중에 136개가 사론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249개 조목의 제목과 내용에 대해서는【부록】으로 첨부한 <『혼돈록』 249개 조목 내용 일람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혼돈록』은 신조본 『여유당전서』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간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혼돈록』의 자료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첫째, 『혼돈록』은 절반 이상이 사론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를 통해 다산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숙종과 정조 연간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산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당파에 얽매이지 않고 냉정하게 역사를 평가하였다. 다산이 자기 나름대로 남인이 분열되고 정치적으로 몰락한 과정을 탐색해 본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중국 역사에 대한 단순한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서 우리의 현실에 입각하여 비판적으로 역사를 검토하였다. 둘째, 신조본 『여유당전서』에 수록되지 않은 다산의 시론과 시편을 확인할 수 있다. 남인 시맥에 대한 정보나 칠언고시의 율격에 대한 논의는 다산의 시론 연구에 참고할 만하다. 신조본 『여유당전서』에 수록되지 않은 희작 성향이 농후한 잡체시(雜體詩)는 다산 시세계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답수차요(踏水車謠)」와 「반지화곡(班枝花曲)」 등에 대한 논의에서는 다산의 실학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셋째, 『혼돈록』은 다산의 여러 저작의 원천 자료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혼돈록』은 『아언각비』 저술의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여타 문장을 짓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원사(原赦)」라는 글은 『혼돈록』 권1의 「왕가종수칠십(王伽縱囚七十)」이 바탕이 되어 완성되었다. 이외에도 「한전(限田)」ㆍ「현령시책(縣令試策)」ㆍ「개천맥(開阡陌)」 등은 『경세유표』에, 「본생부칭백부숙부(本生父稱伯父叔父)」ㆍ「성치(城雉)」 등은 『상례사전(喪禮四箋)』에, 「세실(世室)」은 『춘추고징(春秋考徵)』에 수용되었다. 넷째, 다산의 저술 편찬 경위를 엿볼 수 있었다. 다산은 『혼돈록』 권1의 7조에서 자신이 지은 『맹자차록(孟子箚錄)』이라는 저술을 언급하였다. 『맹자차록』은 현재 전하지 않는데, 본 조목과 관련된 내용은 『맹자요의(孟子要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맹자차록』은 『맹자요의』에 앞서 지었고, 이를 바탕으로 『맹자요의』를 저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고가 다산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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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Classical Chines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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