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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眞殿 儀禮의 유교화 과정과 그 의미
초록
이 글의 목적은 『국조오례의』 眞殿 의례를 해석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의 국왕과 왕비 초상화는 계속 작성되었지만, 국가 길례의 대상은 사실상 태조 초상화에 한정되었다. 나머지 초상화가 의례 대상에서 배제된 이유로 초상화가 불교 전통에서 의례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당시는 유교 의례의 실천을 유교 국가 조선의 정체성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상화가 유교 의례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지 않다. 중국에서도 공자를 묘사한 초상화가 의례 대상임을 조선에서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초상화를 제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초상화 의례가 불교적 환경에서 시행되던 당시의 습속에 대한 반발이었다. 성상을 배제하는 것이 건국 후 조선에서 진행된 유교적 실천의 한 부분이 되었다. 건국초기 조선에서는 종묘에는 神主를 사용하였지만, 별묘에서는 초상화를 안치하였다. 태조가 아버지 桓祖를 위해 啟聖殿을 두었고, 태종은 태조 부부의 초상화를 모신 文昭殿을 운영하였다. 이와 별도로 태조는 생전에 자신의 초상화를 함길도, 경상도, 평안도 등에 배치하였다. 계성전은 폐지되었고, 문소전은 초상화가 아니라 위폐를 두는 공간으로 전환하였다. 태조가 생전에 초상화를 두었던 진전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의례는 정비되어야 했다. 결국 태조 진전의 의례는 명확하게 유교 의례로서 제정되었지만, 여타의 유교 조상 의례와 구분되는 형태로 구성되었고, 국가 祀典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초상화 의례의 확대 재생산은 대체로 차단되었다. 국가와 왕실이 이런 방향성을 굳혔기 때문에 일반 백성의 경우, 문자로 대상을 표기하는 신주로 조상 의례의 형식을 채택하였고, 신주는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불교의 영향 아래 오랜 관습이었을 초상화 제작과 의례의 시행이 점차 조선 사회에서 해소되었다.
키워드
- 제목
- 조선초기 眞殿 儀禮의 유교화 과정과 그 의미
- 제목 (타언어)
- The Confucianization Process of Early Joseon Royal Portrait Rituals and Its Significance
- 저자
- 강제훈
- 발행일
- 2026-02
- 유형
- Y
- 저널명
- 韓國史學報
- 호
- 102
- 페이지
- 189 ~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