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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만일여론’・‘민족협화론’의 전개와 조선인의 인식
초록
본 연구는 조선에서의 ‘선만일여론’과 만주에서의 ‘민족협화론’을 정책・선전・인식의 세 층위에서 비교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에서는 1936년 미나미 총독 취임 이후 ‘선만일여’가 정책의 핵심 기조로 공식화되었고,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대륙병참기지론’과 결합하여 전시 동원의 논리로 전환되었으며, 1941년 미나미-우메즈 회담을 통해 제국 질서의 위계 구조에 편입되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담론 유포・성과 홍보・현장 보고・동원 유도의 네 유형으로 선전을 전개하였고, 삼천리에 나타난 조선인의 담론적 반응은 차별 비판・국책 수용・위계 인식・제도적 적응의 네 유형으로 분화되었다. 만주에서는 관동군이 ‘민족협화’를 내세워 재만조선인에 대한 정책을 배제에서 통제로, 다시 동원으로 전환하였고, 재만조선인통신・만선일보는 과거의 고난을 중국 측에, 현재의 번영을 일본 측에 귀속시키는 ‘고난에서 갱생’이라는 서사를 핵심으로 선전을 전개하였다. 전만조선인민회연합회회보를 포함한 만주 발행 매체에 나타난 조선인의 인식은 소외 인식과 현실 비판・지위 향상 추구・정체성 재구성・황국신민화 수용의 네 유형으로 나타났다. 양 공간의 담론을 비교하면, 조선에서는‘선만일여’의 구호를 내세워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경향이, 만주에서는 만주국 체제 내에서 조선인의 위치와 역할을 모색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나, 양쪽 모두 일제가 제공한 담론의 틀 자체를 문제 삼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는 두 담론이 명칭과 적용 범위에서는 차이가 있었으나, 일본을 정점으로 한 위계 구조 속에서 조선인의 인식과 대응을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하였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 제목
- ‘선만일여론’・‘민족협화론’의 전개와 조선인의 인식
- 제목 (타언어)
- The Development of the “Korea-Manchuria as One” and “Ethnic Harmony” Discourses, and Korean Perceptions
- 저자
- 송규진
- 발행일
- 2026-02
- 유형
- Y
- 저널명
- 韓國史學報
- 호
- 102
- 페이지
- 349 ~ 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