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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당일기에 나타난 17세기 초 대구 사림의 강학활동과 강회講會
초록
모당 손처눌(1553~1634)은 낙재 서사원(1550~1615)과 함께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초반 대구지역의 강학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전란 극복의 사회문화적 토대를 구축했다. 그들은 한강 정구(1543~1620)의 영향을 적극 수용하면서, 특히 소학 맹자 주역 등 경서류나 성리서를 특정한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강학 하면서 연경서원 선사재 영모당 등을 중심으로 통강通講 중심의 강회講會를 의례화 하여 활발하게 전개함으로써 대구지역의 문풍을 진작하고 인재를 양성했다. 17세 기 초반에 이들이 이끌었던 대구지역의 문회文會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대구학풍을 잘 드러내었다. 첫째, 이들은 성리학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이념을 체화하 기 위해 서원이나 서숙에서 이루어지는 통강에서 각자 강독할 서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일정기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강학활동을 전개 했다. 둘째, 강회에서 매일 아침 학령 12조를 벽에 걸어 둔 채 의관을 정제하고 강당에서 배례와 상읍례를 행한 뒤 잠명류를 강하고 나서 백록동규 와 학교모 범 을 읽는 의식을 하는 등 통강의 의례화를 구현했다. 이러한 양상은 율곡 이이 의 학교모범 과 은병정사학규 등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셋째, 강독 서목의 측면에서는 소학과 사서四書 및 성리서를 중심으로 하는 강학활동 을 진행하면서도 심경 주자서절요 퇴계집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퇴계 학파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율곡학파의 장점을 적극 수용했다. 이러한 강학활 동과 강회에 대해서 손처눌의 모당일기에는 세 가지 흥미로운 양상이 나타난 다. 첫째, 강학 공간이 인근 산중의 사찰이나 암자를 찾아 공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향교와 서원 및 서재 등으로 옮겨갔다. 둘째, 서재승書齋僧으로 불리는 승려들이 양반들의 서재나 서숙에 머물면서 음식을 공급하거나 각종 업무를 도우면서 유생들과 함께 한문 공부를 했다. 셋째, 일부 학업 부진 학생들의 서재 무단 이탈의 모습과 그에 따른 조치들을 확인할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모당일기에 나타난 17세기 초 대구 사림의 강학활동과 강회講會
- 제목 (타언어)
- Seminar Activities and Collective Learnings in the Early 17th Century Korea
- 저자
- 박종천
- 발행일
- 2021
- 저널명
- 국학연구
- 호
- 44
- 페이지
- 45 ~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