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소일전쟁(Совет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의 배경과 전쟁 준비
초록
냉전 시기 일본과 한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항복으로 이끈 것이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라는 미국발 담론이 유포되었다. 이에 의하면 소련의 역할은 미국이 일본과 치른 전쟁에 참전했을 뿐, 부차적이었다. 이른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은 극동에서 이권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팽창주의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소련은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자 전쟁 준비가 덜 끝났는데도 일본이 미리 미국에 항복함으로써 얄타협정에서 보장된 자국의 이권이 물거품이 될까 우려하여 개전일자를 앞당겼던 존재로 인식되었다. 소일전쟁에 관하여 소련 측 연구는 이와 다르게 평가한다. 소련군의 관동군 격파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을 가져다준 직접적인 요인이고, 미국의 원폭 투하와 관련해서는 “순수 군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도시와 주민의 말살이 전쟁의 신속한 종결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고 해석이다. 소련이 법적으로 만료되기 전 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일본에 전쟁을 선포한 것은 미국과 영국의 촉구에 호응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에 끼친 소련의 역할에 대해 미국 측은, 일본이 항복을 결정하는 최후의 순간에 소련이 전쟁에 참가했기에 소련의 군사 작전은 주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한 학자는 소련의 공격을 “일본 도시들이 원자폭탄의 불길에 휩싸이거나 버섯구름 속에 증발하는 와중에 벌어진 불장난하는 도둑”에 비유했다. 과연 소련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의 뒤를 따라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회를 기다리다가, 원자폭탄 소식을 접하고서야 전쟁에 참전했을까? 소일전쟁을 지휘했던 메레츠코프 장군은 회고록에서, 원자폭탄 투하가 소련의 작전계획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적 사건은 관동군 격파 계획과 무관하다. 당시 원폭의 결과에 대해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바도 없다.” 소련이 관동군을 격파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병력을 극동으로 이동시키는 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이는 원자폭탄 투하보다 상당한 시간 이전에 확정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 작동했던 연합국들의 공조체제가 적대적 양극체제인 냉전 시기로 전환되면서 적대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착시에 의해 매몰되고 왜곡되었던 수많은 사실들이 발굴과 재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키워드
- 제목
- 소일전쟁(Совет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의 배경과 전쟁 준비
- 제목 (타언어)
- The Background and War Preparation of the Soviet-Japanese War
- 저자
- 민경현
- 발행일
- 2026-01
- 유형
- Y
- 저널명
- 史叢(사총)
- 호
- 117
- 페이지
- 257 ~ 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