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그리스인의 로마 원로원 숭배

The Cult of Senate in Roman Asia Minor
  • 김경현

초록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티베리우스 황제는 황제숭배와 관련해 선임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 다른 정책을 취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자신을 생전에 신격화하는 데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데다, 아우구스투스와 비슷한 예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겸양의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모후 리비아 (아우구스투스의 미망인)를 숭배하겠다는 아시아 속주의 요청을 조건부로 수용했다. 원로원을 함께 숭배하라는 단서가 바로 그것이었다. 즉위 초부터 원로원에 대해 명실상부하게 겸허함을 보였던 그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절충안이 다른 속주로 파급되는 것은 원치 않아, 아시아 속주와 비슷한 황제숭배를 제안한 스페인 속주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런데 원로원 숭배에 관한 비문헌 증거들 (주화 및 금석문)은 일견 위의 문헌증거와는 다른 양상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래서 그 증거들을 망라적으로 수집한 포르니에 이어 키에나스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원로원 숭배는 아시아 속주 뿐 아니라 제국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게다가 서기 2~3세기에 이르러서야 더 활력을 띠었다는 것이다. 필자의 이 글은 문제의 비문헌 증거를 위 두 연구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석해, 오히려 타키투스의 증언이 대체로 유효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두 연구자가 비문헌 증거에서 원로원 숭배의 근거로 간주했던 두 개의 관용구 (theos synkletos와 hiera synkletos) 가운데, 후자는 ‘신적 숭배’라기보다 ‘의례적인 경칭’에 불과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비문에서 원로원을 가리키는 단순한 라틴어 명사 senatus가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그저 synkletos라는 명사만이 아니라 그 앞에 관례적으로 hiera라는 형용사가 추가되곤 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원로원에 대한 신적 숭배가 더 이상 공식적으로 지속되지 않았지만, 기억의 관성 때문에 hiera라는 경어적 표현을 덧붙이는 정도의 예우가 남았던 것이다. 문헌증거가 시사하듯, 속주에서의 원로원 숭배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독특한 절충안이었을 뿐 아니라, 특히 서기 2~3세기경 로마 원로원의 권한과 기능이 거의 유명무실해진 점을 감안할 때, 두 선행 연구자의 가정을 수긍하기 어렵다. 황제숭배의 일환으로서 원로원 숭배가 정식으로 지켜진 것은, 주화들에서 theos synkletos라는 세김글이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서기 1세기 동안, 특히 네로 황제 치세까지였다고 짐작된다. hiera synkletos라는 새김글이 주로 지역 종교의 숭배대상인 신들 (제우스, 아테나, 아폴론, 헤라클레스, 아프로디테, 키벨레 외에, 도시 tyche 등)과 함께 나타나는 반면, 황제, 황후, 로마 여신과 함께 그려진 주화들이 주로 서기 1세기에 분포한다는 점도 그와 관련해 주목할 점이다. 비문헌 증거를 필자처럼 해석하면, 그 결과는 속주의 원로원 숭배에 관한 문헌증거와 대체로 부합한다.

키워드

소아시아황제숭배원로원 숭배티베리우스 황제타키투스비문헌 증거Asia MinorImperial CultCult of SenateEmperor TiberiusTacitusNon-literary evidence
제목
소아시아 그리스인의 로마 원로원 숭배
제목 (타언어)
The Cult of Senate in Roman Asia Minor
저자
김경현
DOI
10.20975/jcskor.2017..50.39
발행일
2017
저널명
서양고대사연구
50
페이지
39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