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 전쟁기 일본 육군의 대러시아 작전 계획과 사할린 점령 문제

The Operations Plan of Japanese Army Forces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and the Political Obstacles to the Occupation of Sakhalin
  • 조명철

초록

의화단 사건 이후 러시아군이 만주의 요지를 점거하자 일본의 참모본부는 대러시아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러시아 작전계획에는 연해주 방면 작전은 삽입되어 있었지만 사할린 점령 작전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영일동맹 이후 러일간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에도 대러시아 작전계획은 더욱 구체화되어 갔지만 사할린 작전은 언급되지 않았고 오히려 한반도에 대한 작전 비중은 높아져갔다. 전쟁 초기에 일본군의 작전계획이 모두 수립될 때까지도 사할린 점령작전은 대본영, 만주군총사령부, 육군성 어디에서도 정식으로 검토되지 않았다. 사할린 점령 작전계획은 러일전쟁 초기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정지을 수 있다. 사할린 점령작전은 나가오카 대본영 참모차장의 개인적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주장되고 요청되었다. 결국 나가오카의 집요한 설득작업으로 대본영은 사할린 점령 작전이 수면 위에 떠올랐으나 주위의 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결국, 발틱함대의 괴멸 이후 일본의 승리가 확정적으로 되면서 사할린 점령작전은 추진되었다. 아무리 전시라 하더라도 전쟁의 목표와 무관한 작전은 절실한 정치적 외교적 필요성을 동반하지 않으면 성립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순수한 군사적 이유만으로 성립할 수 없는 작전이 사할린 점령작전이었다. 이점에서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근거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자 했던 나가오카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즉 나가오카는 정부의 정략적 요구에 대응하는 군사적 작전만을 검토해야 할 참모본부 본연의 권한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돌출 행동은 전시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 있었겠지만 나가오카는 이미 군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정치적 판단에 신중하지 못한 나가오카의 행동에 대해 전후 비판적인 시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1930년대 군의 일탈행위를 예고하고 있다고 하겠다. 러일전쟁에서의 승리가 나가오카의 일탈 행위에 대한 비판의식을 무디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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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러일 전쟁기 일본 육군의 대러시아 작전 계획과 사할린 점령 문제
제목 (타언어)
The Operations Plan of Japanese Army Forces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and the Political Obstacles to the Occupation of Sakhalin
저자
조명철
발행일
2019
저널명
일본연구
31
페이지
207 ~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