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초록
16세기 중반 이후 문학의 장에서 새롭게 문제 제기된 難解性이라는 징후를 통해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살피고 그 의미를 잡아내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고는 우선 난해성을 나타내는 개념어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그 중에서도 껄끄럽거나 생경하다는 의미를 지닌 계열보다는 천기의 자연스러운 유출을 긍정하는 난해성, 즉 ‘깊이 있는 어려움’의 계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난해성을 용인하는 태도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첫째, 난해성을 용인하는 태도는 文才를 과시하는 사유와 연관 되어있다. 다만난해한 문장의 서술이 문재의 과시를 위한 도구에 그친다면 그 글이 형식적으로 아무리 수준 높다 하더라도 瑣末主義(trivialism)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더욱 포괄적인논의를 통해 16 ‧ 17세기 문인들은 쇄말주의로까지는 경도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알 수있었다. 둘째, 난해성을 용인한 태도는 산문의 고유한 文藝美 인식이라는 자양을 기반으로한다. 즉 그들은 과학적‧실용적 언어의 투명성보다 문예적 언어가 지닌 불투명성의가치를 인식하였으며, 결국 私的 散文에 깊이를 더하려는 이들의 고민이 난해성을 제한적으로나마 용인하는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다. 셋째, 위와 같은 태도는 정해진 법도를 상정하지 않고 문장의 진행에 따르려는 의식의 지향과 개성을 추구하려는 글쓰기라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익은 ‘勢’로써 자신의 글이 난해하다는 비판을 극복하려 했고, 난해한 글쓰기로 정평이 나있는 前後七子의 문학과 글쓰기를 유몽인은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변호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이와 같이 난해성을 용인한 배경적 요인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우선 개인적 상황이다. 즉 16 ‧ 17세기라는 불우한 상황과 당대 문예적 인식의 제고로 인해 문장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기려던 문인지식인들은 전달의 편의성을 다소 희생하고서라도 난해성을 일부 수용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당대 불안하던 정치현실로 인해 자신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문인들이 글을 애매하고 불투명하게쓴 것 역시 의미의 파악을 지연시켰다. 다음으로 莊子 의 유행이다. 특히 장자 의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변개하는 경우, 대체로 정확한 의미파악이 용이하지 않게 된다. 이것 역시 난해성을 추동하는 데 비교적 직접적인요인을 제공하였다. 마지막으로 세계관의 측면이다. 특히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에이르는 시기는 커다란 조화에 균열이 진행되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 조화를추구할 근거였던 세계관의 균열은 개인의 가치에 중심을 두게 하는 결과로 드러났고,결국 그것이 난해성을 도출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볼 때, 일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였지만 이 시기 작가들은 시와 산문을문학적 지평에 두고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문학의 의미를 고민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할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 즉 문학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문학적 측면에서 작품을 평가하고 창작하였다는 사실이 16 ‧ 17세기 난해성을 용인한 태도와 그 작가들이 지닌 의미이다.
키워드
- 제목
- 難解性을 통해 본 16‧17세기 문학과 환경
- 제목 (타언어)
- A Study on the field of literature and the meaning through difficult literature work in 16th~17th century
- 저자
- 안득용
- 발행일
- 2012
- 저널명
- 한국한문학연구
- 호
- 49
- 페이지
- 275 ~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