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종전 120주년의 의미와 한・일 관계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

Reflections on the 12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Russo-Japanese War: An International Legal Perspective on Korea-Japan Relations

초록

1904년에서 1910년 시기 국제사회는 다자적 관계에서 공동체 이익을 염두에 두기보다 양자적 관계에서 개별 국가의 이익을 강조했다. 이 점에서 러일전쟁 시기 국제사회는 지금보다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 관계가 훨씬 더 강했다. 1876년 이래 일본과 조선/한국은 국가로서 상호 교류했다. 1904년 러일전쟁 시기 한국(대한제국) 정부는 자국의 영역 내에서 실효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 1904년 2월 이후 한국의 영토에서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졌어도 이를 통제할 권한이 없었다. 1910년 이후 한국 정부가 완전히 사라지고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영역을 실효적으로 통치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후 한국을 전리품으로 취급했다. 올해는 러일전쟁 종전 120주년이다. 한국 문제는 1894년 청일전쟁 발발의 중요한 이유였지만 1904년에는 전 세계적인 관심 사항이 되었다. 흔히 이 시기 국가들은 타국에 대해서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 중반부터 국가들은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타국의 영토를 변경하지 않는 것을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으로 간주하였다. 국제관계에서 전쟁도 일종의 합의사항이었다. 공식적으로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 한 국가가 타국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밖에 없었다. 이러한 원칙은 이미 1837년 미국과 영국 사이의 캐롤라인 호(The Caroline) 사건 이후 국제법으로 정립되었다. 아울러, 무력 충돌 시 교전국이 아닌 국가들에는 중립의 의무가 있었다. 교전자는 중립국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국제법이었다. 1904년 2월 일본은 한국과 동맹관계를 형성했다거나, 1905년 11월 보호 관계를 형성했다고 하지만, 1910년 8월 병합했다. 결국 일본은 한국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러시아와 정복 전쟁을 수행한 것이었다. 1904년 1월 이후 1945년 8월까지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여 점령했다. 한국이나 일본이 당사국인 1899년 헤이그 협약에 따르면 점령 당국은 점령지에서 유효한 법 제도를 존중해야 하지만, 일본은 1904년 이후 점령지 한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치를 시행하였다. 이들 조치는 일본이 한국 병합의 의지로서 시행한 것이었고 점령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1904~1905년 러일전쟁은 1945년 이후 한국의 광복,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러일전쟁의 국제법적 평가는 현재뿐만 아니라 장래에도 더 다양하게 다뤄질 것이다.

키워드

Law of War; Korea-Japan Relations; The Russo-Japanese War; Conquest; Annexation; Law of Occupation; Protectorates; 전쟁법; 한・일 관계; 러일전쟁; 정복; 병합; 점령법; 보호국
제목
러일전쟁 종전 120주년의 의미와 한・일 관계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
제목 (타언어)
Reflections on the 12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Russo-Japanese War: An International Legal Perspective on Korea-Japan Relations
저자
강병근
발행일
2025-09
유형
Y
저널명
국제법학회논총
권
70
호
3
페이지
19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