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언론의 한국 ‘형상화’와 제국주의적 여론 형성

The Figuration of Korea and Formation of Imperialistic Public Opinion by British Press from the Late 19th to the Early 20th Century
  • 김소영

초록

영국 언론은 19세기 중반부터 “미지의 나라”였던 한국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1876년 조선이 ‘개항’하자 영국 언론의 보도는 더욱 빈번해졌지만 여전히 서구국가들에게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자 “은둔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지속되었다. 1880년대 조영수호통상조약 체결과 거문도 점령 사건으로 영국 언론의 보도가 급증하고 더 많은 정보를 통해 “은둔의 나라”라는 조선의 이미지는 퇴색되어 갔다. ‘새로운’ 정보는 거문도 사건을 중심으로 조선의 지리적 위치와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낙후’하고 ‘혼란’하다는 것이었다. 영국 언론은 동학농민전쟁과 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을 청과 일본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으로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 언론은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며 한국이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가기보다는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는 편을 지지했다. 한국정부나 한국민을 행위나 의지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만 취급하며 러시아와 일본간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 그리고 ‘점령’의 대상으로만 ‘사물화’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한 직후 일본이 한국을 강제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자 영국 언론은 이를 일본이 한국과 한국의 황제의 지위를 이집트와 헤디브(khedive)의 지위로 만들려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의정서’ 체결 이후 일본의 대한정책을 ‘혜택’으로 평가했다. 1910년 8월 일본은 한국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영국 언론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결과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고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보도했다. 이처럼 1905년을 전후하여 1910년까지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화하고 다시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영국 언론의 보도는 제국주의적 언론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즉 영국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현상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당연한 귀결로 보도했다. 또 일본의 한국 통치를 영국의 이집트 통치에 비유하며 제국주의 팽창과 통치를 “문명의 혜택”으로 긍정했던 것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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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언론의 한국 ‘형상화’와 제국주의적 여론 형성
제목 (타언어)
The Figuration of Korea and Formation of Imperialistic Public Opinion by British Press from the Late 19th to the Early 20th Century
저자
김소영
DOI
10.34252/acsri.2018.47..003
발행일
2018
저널명
아시아문화연구
47
페이지
87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