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초록
이 글은 1960년대-1980년대 한국영화에서 ‘무당’이 재현되는 양상을 고찰하여 샤머니즘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과 맥락을 밝히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주로 타파해야 할 미신이자 전근대의 인습으로 재현되었던 ‘무당’이 1970년대 영화에서는 ‘문예영화’의 주인공으로 전면화되며 예술의 일부가 되고, 그것이 1980년대까지 이어지며 변주되는 맥락이다. ‘무당’에 대한 천시와 폄훼의 역사는 길다. 조선시대에서부터 ‘무당’은 ‘광대’와 동일시되며 풍속을 교란하는 음탕한 집단으로 천시되었다. 그리고 근대 이후에는 근대의 미덕과 대척점을 이루는 전근대적 악덕의 상징이었다. 한국영화사에서 샤머니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1960년대 전반기까지 비교적 분명하게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70년대 영화에서부터 ‘무당’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다. 1970년대 전반기에는 수난 받는 여성에서 1970년대 후반기부터는 역사적으로 억압받은 피지배자를 상징하는 대표적 계층 중 하나로 그 함의가 옮겨간다. 동시에 천시되고 적대시되는 미신에서 한번 되돌아보아야 할 ‘전통’이자 과학으로 분석해볼만한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에로티시즘의 단골 소재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사에서 이와 같이 무당 표상이 변화하게 되는 맥락은 무엇인가?첫째, 영화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196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향토 서정의 소재가 고갈되어 1970년대에는 국책 차원에서 보상을 받는 예술(문예)영화를 위한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다. 둘째, 유신체제와 함께 강화된 민족 이데올로기, 그것의 구체적인 문화 사업으로 전개된 전통 복원 사업이 새로운 소재를 원하는 영화계의 요청과 손을 잡는다. 셋째, 1970년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한 영화계의 심각한 불황은 영화 생산자로 하여금 텔레비전과는 차별되는 영화를 지향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에로티시즘의 성행을 가져왔다. 한편 불황으로 인해 영화산업의 국가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영화계로서는 체제 이념에 부합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이때 ‘무당’은 전통문화의 일부로서 정부의 포상을 받기 위한 예술영화의 조건을 충족하는 동시에, 수난 받는 하층민 여성의 에로티시즘이 개화할 여지를 충분히 가진 소재였다. 게다가 김동리라는 본격 문학의 대부가 ‘생명의 구경’, ‘민족의 원형’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무녀도」와 『을화』를 썼고, 이 소설들은 이미 한국문학의 정전이 되어 있었다. 1970년대 위기에 빠진 영화는 그것을 수용하여 예술로서의 ‘문예-’라는 수식어이자 보증서를 얻은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산된 ‘무당’ 표상을 보여주는 영화들은 예술영화인 동시에 에로티시즘 영화가 될 수 있었고, 억압에 순응하는 영화인 동시에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무당’ 표상이 지녔던 여성의 수난과 욕망이라는 함의가 1980년대에는 ‘무당’이 지닌 하층민으로서의 상징성 때문에 민중의 수난과 저항으로 치환되어 간다. 한국영화사에서 1970년대는 ‘암흑기’로 불린다. 그리고 1980년대는 ‘암흑 속의 모색기’로 불린다. 이렇게 본다면 1970년대 영화보다 1980년대 영화가 보다 다양하고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무당 표상으로 보았을 때에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무당’에는 현실과 환상, 숭고함와 비천, 순응과 욕망, 긍정과 부정 사이의 머뭇거림이 존재한다. 그러나 ‘무당’이 민중의 상징이 되면서 모순되는 요소들의 긴장과 여성의 욕망은 배제되거나 순치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시대에 대한 인식 속에는 너무나 많은 층과 결이 결락되어 있다. 우리는 10년 단위의 정치사적 구분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시대를 바라보는 ‘균일한 기억’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무당’ 표상의 변화를 통해 1970-80년대 한국영화사에 대해 생각해 본 이 글은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키워드
- 제목
- 샤먼의 기억 ―한국 영화에 나타난 ‘무당’ 표상
- 제목 (타언어)
- Memory of Shaman: Aspects of “Shaman” in Korean films
- 저자
- 박유희
- 발행일
- 2012
- 저널명
- 현대문학이론연구
- 호
- 48
- 페이지
- 185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