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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길림지역의 기인과 토지 개간
초록
만주의 농경 개발을 한인의 이주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만주의 발전을 곧 “한화”와 동일시하는 학술적인 전통은 청대 만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오랫동안 큰 영향을 끼쳐왔다. 학자들은 내지에서 발달한 정주 농경 중심의 한인 문화를 선진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만주의 수렵 채집 활동을 낙후된 것으로 대비해왔다. 또한 청대 만주에서 농경을 비롯한 자연자원의 적극적인 개발은 오랫동안 지체되었고, 19세기에 한인의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비로소 만주의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여겨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한화론의 해석은 한인의 주체적 역할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만주의 자연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이용해온 청의 노력을 과소평가해왔다. 농경은 수렵 채집과 함께 만주의 자연에서 핵심적인 영역이었다. 만주에서 기인을 보호하고 부양하기 위해서는 토지 개간과 농경이 전제되어야 했기 때문에 청은 이미 홍타이지 시기부터 만주에서 농경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입관 후 황실은 만주에 기인을 주둔시키고 이들의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서 토지의 안정적인 경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팔기병정은 만주의 요충지에 주둔하며 황실의 발상지지를 관리하고, 민인은 토지를 경작하여 기인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만주의 산과 강은 불법채취인의 출입을 통제하여 수렵과 채집에 적합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청대 만주 정책의 핵심이었다. 국가가 기인과 민인, 토지와 삼림을 모두 완벽하게 통제할 때 비로소 기인을 위한 만주근본지지라는 제국의 이상이 완성될 수 있었다. 본고는 건륭-가경년간 길림에서 토지 개간과 농경이 확산되고 기인과 민인의 관계가 재편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특히 『琿春副都統衙門檔』의 자료를 활용하여 기인과 민인의 토지 경작이 훈춘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팔기제도와 토지 경작이 청대 만주의 자연환경을 변화시킨 핵심적인 요인이었음을 설명한다.
키워드
- 제목
- 청대 길림지역의 기인과 토지 개간
- 제목 (타언어)
- Bannermen and Land Cultivation in Qing Manchuria
- 저자
- 김선민
- 발행일
- 2023-09
- 저널명
- 史叢(사총)
- 호
- 110
- 페이지
- 175 ~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