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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성곽방어체제 정비와 산성제 운영의 변화
초록
조선 후기 성곽방어체제는 전통적인 산성입보책을 고수하면서도 왜란ㆍ호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각도로 운영되었다. 군현 단위를 기준으로 볼 때 15세기 산성단독유형이 압도적 비중이었으나 16세기 이후 읍성 중심의 방어체제가 두드러졌고 18~19세기 단계에서는 ‘읍성+산성’형 군현이 늘어나는 점이 뚜렷한 특징으로 포착된다. 이는 행정거점인 읍성과 유사시 입보처인 산성을 하나의 방어 단위로 묶어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하고자 한 제도적 지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서울ㆍ경기 및 평안ㆍ황해 지역에서 집중 포착되며 경상ㆍ전라 지역은 읍성 위주에 산성이 보완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충청ㆍ강원ㆍ함경도는 산성제 운영에 크게 유의하지 않은 지역이다. 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산성운영의 효율을 기하고자한 것으로 그 저변에는 산성입보의 효용을 강조하는 ‘산성론’과 읍치 사수를 중시하는 ‘읍성론’의두 갈래 담론이 존재했다. 유성룡으로 대표되는 산성론은 산성입보책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수도 서울의 입보처인 북한산성 축조로 상징성을 얻게 된다. 유형원으로 대표되는 읍성론은 민호와 물자가 집중된 읍치를 사수함으로써 군민의 일치단결을 꾀하고자 한 것으로 영조 대 무신란을 거치며 도성사수론의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 대외적 긴장의 고조를 배경으로 정약용ㆍ신관호 등에 의해 산성 중심의 民堡論이 다시 제기되기도 하였다. 장기평화기를거치면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시기 산성제 운영은 읍성론과 각축하면서 상호 절충과 타협을 통해 지역방어의 실질적인 효용을 기하는데 집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조선후기 성곽방어체제 정비와 산성제 운영의 변화
- 제목 (타언어)
- Adjustment of the Fortress Defense System and Changes in the Operation of the Mountain Fortress System in the Late Chosŏn Dynasty
- 저자
- 송양섭
- 발행일
- 2026-03
- 유형
- Y
- 저널명
- 조선시대사학보
- 호
- 116
- 페이지
- 7 ~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