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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중원문화
초록
최근 시행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포함된 ‘중원역사문화권’이 포함됨에 따라 중원역사문권의 시공간적 범위와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중원지역의 공간적 범위에 대한 논의를 검토하고, 중원지역의 고구려 유적·유물에의 내용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중원지역 또는 중원문화권의 공간적 범위와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고, 대체로 현재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일원을 공간적 범위로 하되, 경기, 강원, 경북 등 주변 지역을 외연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과 통시적인 관점에서 엄격하게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좁은 지역으로 국한해야 한다는 견해도 상존하며, 이는 중원문화의 정체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중원지역은 단일 국가의 중심으로 기능한 적이 없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변경이자 교차점이라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중원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변경, 포용과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중원지역의 고구려 유적은 관방유적과 고분군 및 생활유적 등이 있으며, 관방유적이 가장 많이 조사되었다. 충주지역에 위치한 고분군은 대체로 5세기 중엽경으로 편년되는데, 이는 5세기 중엽경 북한강수계를 따라 충주지역을 확보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밖에 진천 대모산성과 송두리유적, 청주 정북동토성, 세종 남성골산성, 세종 나성과 대평리유적, 대전 월평동유적 등은 5세기 후엽의 짧은 시간 동안에 사용된 것으로 475년 한성공함 이후 웅진 방면으로 남하한 고구려 군이 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밖에 진천 회죽리와 청원 상봉리에서도 고구려 금제이식이 채집되었는데, 남성골산성에서 출토된 금제이식과 함께 당시 남하한 고구려 군의 위계가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상의 고구려 유적은 존속기간이 길지 않아 대체로 6세기를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는바 백제 왕실의 안정과 한성수복 노력의 결과 500년을 전후한 시점에 다시 한강 이북의 아차산 일원으로 후퇴하여 보루를 구축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중원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유적은 5세기 후엽 고구려와 백제의 각축 양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물적 증거라는 데 의미가 있다.
키워드
- 제목
- 고구려와 중원문화
- 제목 (타언어)
- Historical meaning of Koguryo relics in the Jungwon cultural area
- 저자
- 최종택
- 발행일
- 2022-12
- 저널명
- 중원문화연구
- 권
- 30
- 페이지
- 1 ~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