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開土王陵碑 이전의 朱蒙 神話 -策略的 영웅들의 행방-

Jumong Myth before the Stele for King Gwanggaeto
  • 김흥규

초록

이 논문은 414년에 세워진 「廣開土王陵碑」를 핵심 자료로 삼아 그 이전의 주몽 신화가 어떠했는가를 논한 것이다. 「광개토왕릉비」와 『위서』 고구려전은 주몽 전승에서 해모수-하백 대결과 유화 추방이라는 화소들이 5, 6세기보다 뒤에 첨가되었으리라는 추정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었다. 그러나, 서사 단위들의 의존 관계를 분석해 보면 이 문헌 증거들의 해석은 역전되어야 한다. 유화가 금와왕의 궁궐에 갇혀 신비로운 빛을 받고 회임하려면, 먼저 수궁으로부터의 추방과 그것을 불가피하게 하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 해모수의 북부여 강림, 詭術에 의한 유화 포획, 혼사를 둘러싼 해모수-하백의 경쟁과 책략 등이 이를 위한 서사단위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광개토왕릉비」가 이 모두를 생략하고 추모왕의 신성한 혈통만을 강조한 것은 비문의 제약과 정치적 수사의 필요성 때문이지, 당시까지의 고구려 건국 신화가 천상에서의 행복한 혼인․출산과 주몽의 북부여 강림 및 여유로운 南行으로 구성되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서두 부분과 함께 책략적 영웅의 모습이 뚜렷한 주몽-비류국왕 대결 단락은 서사 내용과 고구려 정치사의 조응 관계에서 3세기 말 이전의 정착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詭計와 주술로써 비류국왕을 굴복시키는 ‘성스러운 탈취’는 주몽 신화의 桂婁部 중심적 시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적 인식의 지형으로 볼 때 이 단락은 두 개의 동심원으로 이루어진 집단 구획에서 안쪽 원의 ‘우리’인 계루부가 그 바깥의 ‘저들’인 비류국과 대결하여 승리하고, ‘더 큰 우리’라는 外圓에 포섭하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집단 의식의 중층성은 계루부 왕권의 성장이 아직 部 체제의 간극을 해소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정치사적 상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광개토왕릉비를 이정표로 삼을 때 그 이전의 주몽 전승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原註로 수록되어 전해지는 ‘구삼국사’의 자료다. 『삼국사기』의 주몽 신화는 ‘구삼국사’본의 신이한 부분을 덜어내고 축약하면서 『위서』 등을 부분적으로 참고한 재편집본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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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廣開土王陵碑 이전의 朱蒙 神話 -策略的 영웅들의 행방-
제목 (타언어)
Jumong Myth before the Stele for King Gwanggaeto
저자
김흥규
발행일
2011
저널명
어문논집
63
페이지
5 ~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