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시가의 유민 형상과 호모 아토포스적 면모

The Image of Refugees as Homo Atopos in the Poetry of Joseon Dynasty

초록

본고는 조선시대의 국문시가와 한시에 나타난 유민의 삶의 면모를 호모 아토포스의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백성’을 뜻하는 장소상실의 존재로서의 流民을, 장소를 뜻하는 희랍어 ‘토포스(Topos)’에 결여 혹은 부정의 접두사 ‘아(a)’가 결합하여 ‘어떤 장소에도 고정될 수 없거나 정체를 헤아릴 수 없는 존재 및 상태’를 의미하는 ‘호모 아토포스’의 전형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유민을 ‘호모 아토포스’로 호명하는 이유는, 행위자와 그 행위의 터전이 되는 장소를 연관지어 살펴볼 때 그 모습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민은 생체권력의 죽음정치로 인해 전국적으로 산포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비장소는 전국에 걸쳐 있다. 따라서 유민들은 ‘고통받는 얼굴’을 지닌 존재들이며 ‘낯선 두려움’이라는 공포의 심리적 기제를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사한시나 현실비판가사 등을 살펴보면, 창작자인 양심적 지식인들은 유민들의 고통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시적 공간에 펼쳐내며, 애민정치의 당위성을 강조했던 조선 정부가 직면한 시스템의 오작동을 고발하였다. 여기에 나타난 ‘공감의 연대’는 개별작가 수준을 넘어, 고구마 줄기처럼 확장되며 삶을 갈망하고 권력에 맞서는 이들의 존재론적 연대, 즉 ‘공감의 비정형적 네트워크’를 이룬다. 한편 일부 국문시가에서는 고양된 어조나 정감 위에서, 때로는 체제 전복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潛行者의 면모가 나타나기도 한다. 19세기 민란의 과정에서 가사와 민요 같은 노래가 창작되어 결집과 투쟁의지를 고취했던 연대의 과정은 ‘저항의 비정형적 네트워크’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유민을 바라보던 일반적인 시선과 인식이 유민을 구휼이 필요한 존재, 고통이나 결여로 정의되는 존재, 국가 전역에 산포된 개별자로 다루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유민들의 비장소는 존재론적 극한상황에 직면한 파멸과 절망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상상력이 현실적인 억압과 飢餓라는 고통에서 피어나듯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열망 또한 이 비장소에서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시가에서 확인되는 공감과 저항의 비정형적 네트워크는, 유민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연대의 확장성을 지닌 능동적 주체였으며, 그런 점에서 그들의 비장소가 새로운 희망의 원리이기도 했음을 시사한다.

키워드

Homo Atopos; Liú mín(流民); identity; placelessness; solidarity; 호모 아토포스; 유민; 정체성; 비장소성; 연대
제목
조선시대 시가의 유민 형상과 호모 아토포스적 면모
제목 (타언어)
The Image of Refugees as Homo Atopos in the Poetry of Joseon Dynasty
저자
이형대
발행일
2024-02
저널명
민족문화연구
호
102
페이지
265 ~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