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 남성성의 역린(逆鱗): <7인의 여포로> 사건의 재맥락화

Touching the Raw Nerve of Militaristic Masculinity: Recontextualizing The Seven Female POWs Case

초록

본고에서는 <7인의 여포로>의 현전하는 시나리오들과 검열문서, 공소장을 분석하여 <7인의 여포로> 사건을 재맥락화해 보았다. 이를 통해 <7인의 여포로>가 강고한 반공도식에 의해 수난을 당했다는 통설을 넘어, 군사주의 남성성의 역린을 건드린 여성전쟁영화였음을 밝혔다. 이 영화는 1963년에 제작 신고가 처음 이루어졌으나 1964년에 이만희 감독에 의해 개작되면서 이야기가 크게 달라졌다. 1963년 대본에서는 간호장교가 주인공이었는데, 1964년 대본에서는 미군 위안부로 바뀐다. 이 영화의 검열 과정 내내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미군 위안부의 재현이었다. 1964년은 군사정권이 반공법을 이용하여 내부 통제를 강화한 시기이다. 이 해에는 한일협정반대시위로 군사정권이 국민의 저항에 부딪힌 가운데, 주한미군의 횡포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비등했다. 게다가 베트남 파병, 한미행정협정에 대한 요구 등 한미관계에서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때 군사정권의 모순을 담지하고 있는 존재, 그래서 군사정권이 가시화를 꺼리는 ‘미군 위안부’를 <7인의 여포로>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더구나 이 주인공이 남한 사회와 군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이에 더해 인민군에게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인 남자라고까지 말한다. 이는 미군 위안부의 존재를 지울 수 없다면 이 영화를 제거해야 할 만큼 문제적인 사안이었음이 검열서류와 검찰공소장에서 드러난다. 이 영화는 군사정권이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더욱 강퍅해져 가던 군사주의 남성성의 모순과 열등감을 건드렸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성원권을 부정하고 인간을 축소화하면서 대결만을 조장하는 한편 위계와 폭력에 순종하는 협소하고 이중적인 남성성의 치부였다. 그리고 그것의 폭력적 발현은 군사정권이 내부의 전시체제를 구축하며 반공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1964년의 정세와 맞물려 있었다. 그래서 <7인의 여포로>는 헤어 나오기 힘든 핍박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제작사와 검열 당국 간의 긴 타협 끝에 이 영화는 미군 위안부의 존재를 최대한 지운 채 개봉하게 되는데, 제목까지 바뀐 <돌아온 여군>이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키워드

군사주의 남성성; 여성전쟁영화; 영화 검열; <7인의 여포로>; 이만희 감독; 미군 위안부; 반공법; <돌아온 여군>; Militaristic Masculinity; Women-led war film; Film Censorship; Seven Female POWs; Lee Man-hee; US Military Comfort Women; Anti-Communist Law; The Returned Female Soldiers
제목
군사주의 남성성의 역린(逆鱗): <7인의 여포로> 사건의 재맥락화
제목 (타언어)
Touching the Raw Nerve of Militaristic Masculinity: Recontextualizing The Seven Female POWs Case
저자
박유희
DOI
10.17948/kcs.2026..111.159
발행일
2026-05
유형
Y
저널명
민족문화연구
호
111
페이지
159 ~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