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계몽과 예술지상주의 사이 ―1960년대 문예영화에 나타난 식민지 예술가의 표상Between National Enlightenment and Art for Art’s Sake ―The Representations of the Colonial Artists in Literary Films of the 1960s
- Other Titles
- Between National Enlightenment and Art for Art’s Sake ―The Representations of the Colonial Artists in Literary Films of the 1960s
- Authors
- 박유희
- Issue Date
- 2014
- Publisher
- 한민족문화학회
- Keywords
- Representation; National Enlightenment; Art for Art’s Sake; Colonial Artist; Literary Film; Anticommunism; Na Un-gyu; Ch’unwŏn Yi Kwang-su; Wings of Yi Sang; 표상; 민족계몽; 예술지상주의; 식민지 예술가; 문예영화; 반공주의; < 나운규 일생> < 춘원 이광수> < 이상의 날개>
- Citation
- 한민족문화연구, v.48, no.48, pp.607 - 646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민족문화연구
- Volume
- 48
- Number
- 48
- Start Page
- 607
- End Page
- 646
- URI
-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00061
- DOI
- 10.17329/kcbook.2014.48.48.019
- ISSN
- 1598-9836
- Abstract
- 이 글은 1960년대 예술가 전기 영화에 나타난 식민지 예술가의 표상을 통해 한국영화가 식민지시기 예술을 기억하는 방식과 그 함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식민지시기 예술가의 표상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하나는 천재성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애이다. 그러나 자유분방함과 민족애는 한 인물 안에서 결합되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자유분방함이 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민족애는 혈통, 언어, 문화의 공통성에 기반을 둔 민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두 요소는 근본적으로 모순을 이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예술가의 표상에 있어서 두 요소를 병치하는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일종의 관습이 되어 2000년대 <취화선>(임권택, 2002) 같은 영화에까지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이 글에서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즉 왜 식민지시기 예술가를 재현할 때에 두 요소는 병치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관습이 1960년대 후반에 형성되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 이 글에서 주목한 것은 식민지시기 실존했던 예술가를 그리고 있는 1960년대 후반 문예영화들이다. <나운규 일생>, <춘원 이광수>, <이상의 날개>를 중심으로 1960년대 후반 문예영화를 통해 소환된 식민지시기 예술가의 표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드러난 예술가의 스펙트럼은 민족계몽에서 예술지상주의 사이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나운규 일생>에서 그것은 모순된 형태로 병치된다. <춘원 이광수>는 민족계몽문예로서의 예술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광수의 삶이 위대한 예술가를 넘어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한 순교자적 행보로, 그의 문학은 민족에게 빛을 던지는 민족계몽문예로 추앙된다. <이상의 날개>는 예술지상주의자의 표상으로 치우친 예이다. 일견 상치(相値)되는 두 가치, 즉 민족계몽과 예술지상주의가 동시대에 예술로 수용되고 독려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맥락이 있다.
<나운규 일생>에서 잘 드러나듯이 천재로 규정된 예술가는 무슨 짓을 해도 예술의 이름으로 수용되고, 기묘한 행동이 예술가를 한층 더 천재로 만드는 회로, 그리고 그것을 무작정 지지하는 여인이 곁에 있는 구도, 그것이 예술가 영화의 기본적인 구조였다. 이광수도, 이상도 이 점에서만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러한 회로의 이면에는 강력한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우선 예술가는 배일(排日)과 반공(反共) 이외에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단순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은 단순할 수 없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혁신을 지향한다. 그런데 정치적․사회적 불만 표출이 금지된 상태에서 그 혁신의 범주는 예술 형식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적 발언을 지양하고 예술적 기교에 탐닉하는 예술가들이 진정한 예술가로 추앙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말한 이상이 식민지시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영화화되고, 그의 괴팍하고 방탕한 생활이 예술성의 발로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리고 그것은 박정희 정권이 독재체제로의 전환을 본격화하며 검열을 더욱 강화하던 시기에 춘사 나운규와 춘원 이광수가 민족적인 예술가로 소환되며 우상화된 것과 짝패를 이루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배제와 억압은 리비도의 쏠림을 유발한다. 현실에 대한 표현의 길이 막힌 채 형식 미학 쪽으로만 활로가 열려있을 때 개인적인 절망과 방탕은 ‘자유’의 이름으로 더 과장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식민지시기일 때에는 ‘일제치하(日帝治下)’라는 상황이 모든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일제치하는 구체적 현실이 아닌 대전제로 작동하며 예술가의 방황을 합리화해주는 것이다. 더불어 그 속에서 식민지 경험은 ‘민족의 피해’로 단순화 되며 친일행각도 전위예술가의 죽음도 모두 동일한 ‘피해’가 되어 버리고 만다. 요컨대 식민지 예술가의 한정되고 모순된 표상은 식민지 잔재의 합리화와 논리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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