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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문학 영화화의 추이와 맥락-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A Study on the Processes and Contexts of Filmization of Yi Kwang-su's Literature

Other Titles
A Study on the Processes and Contexts of Filmization of Yi Kwang-su's Literature
Authors
박유희
Issue Date
2013
Publisher
상허학회
Keywords
Chun-won Yi Kwang-su; Yi Kwang-su' s Literature; original work; historical film; melodrama; conventional melodrama; literary film; enlightening nationalism; 춘원 이광수; 춘원 소설; 영화원작; 사극영화; 멜로드라마; 신파적 멜로드라마; 문예영화; 민족계몽
Citation
상허학보, v.37, pp.237 - 278
Indexed
KCI
Journal Title
상허학보
Volume
37
Start Page
237
End Page
278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06372
DOI
10.22936/sh.37..201302.007
ISSN
2765-1959
Abstract
본고는 해방 이후 한국영화사에서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원작으로 수용해온 과정에 대한 고찰이다. 이 글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춘원 소설을 영화화하게 되는 영화사적 맥락이다. 다시 말해 해방 이후 춘원의 소설이 활발하게 영화화되는 이유를 한국영화가 처했던 상황과 그것에 적합한 춘원 소설이 원작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통해 탐색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춘원과 춘원 문학의 위상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춘원 문학의 영화화 현황을 개관하였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는 사극영화의 원작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는 멜로드라마의 원작으로 춘원 소설이 한국영화에 수용되는 과정을 영화제작을 둘러싼 정책, 장르, 관객의 맥락 속에서 추적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춘원 소설이 영화 원작으로 쇠퇴하는 맥락을 짚어보았다. 근대 이후 1960년대까지 베스트셀러였던 춘원 소설은 그 인기와 대중적 인지도로 인해 해방 이후 한국영화계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원작이 되었다. 시나리오 품귀 시대이자 사극영화의 전성시대인 1950년대에는 사극영화의 원안이 되는 한편, 여인의 운명적인 수난을 보여주는 ‘신파적 멜로드라마’의 저본으로 쓰였다. 그런데 영화의 실제 내용은 춘원 원작이 아니어도 무방하거나 원작을 동시대 영화의 관계망 안에서 대폭 각색한 것이었다. 이 시기의 영화는 춘원 문학의 실질보다는 춘원의 명성과 권위를 빌린 측면이 크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 재건과 윤리에의 요구가 본격화되면서 『흙』이나 『재생』과 같은 그의 대표작이 당대가 원하는 민족 계몽적 멜로드라마에 부합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 영화계, 관객이 요구하는 ‘민족적 공감’을 충족시키며 영화원작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부터 춘원의 친일 행적은 그를 둘러싼 담론에서 후경으로 밀려나고 민족문학의 대부로서의 이미지가 강화된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 문예영화의 전성기에 이르면 춘원은 원작자로서는 최고의 문호로 추앙되는데도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문예영화’로 대접받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 시기 문예영화의 현대적 주제와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기에 춘원 소설은 너무 진부하고 교훈적이었던 데 그 이유가 있었다. 이에 춘원 소설은 표면적인 주제는 보수적이지만 자극적인 부분이 확대되는 멜로드라마로 각색되어 소비된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시대가 도래하여 영화산업이 불황에 빠지고 국가는 독재체제로 치닫는 가운데 영화정책이 경직되면서 춘원 문학은 정권과 영화계 양쪽에서 명분으로 이용된다. 정권은 반공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납북자’인 이광수를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격상시키고, 침체의 늪에서 정부의 보상에 매달리던 영화계는 ‘반공, 계몽, 문예’의 기준을 충족시켜 우수영화로 선정되기 위해 ‘춘원 이광수’라는 이름을 원작자로 내세운다. 그럴수록 춘원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원작과 괴리되는 것은 물론 관객과도 멀어져갔고, 그 결과 ‘춘원 이광수’라는 이름은 허울로만 남게 되었다. 춘원 문학이 영화화된 추이를 살펴보면 1960년 <흙>이 민족계몽영화로 대접받던 한시적인 시기 이외에 춘원 소설의 영화화에서 ‘원작에의 충실성’이 추구된 적이 없었다. 춘원은 대부분의 소설을 신문에 연재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서사 요소들이 장면 별로 흥미로우면서도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긴장이 있는 한편 그 요소들의 구조적인 결속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이는 춘원 문학이 영화에서 수용할 만한 많은 모티프와 에피소드의 저장고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춘원의 인기 소설은 이미 식민지시대부터 여러 서사형식으로 재구성되며 대중문화의 관습 안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춘원 문학이 제공하는 서사란 1950년대 이후에는 굳이 춘원이라는 이름이 없어도 구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원이 한국영화사에서 최다 원작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영화가 ‘춘원의 문학’보다는 ‘춘원이라는 이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영화를 둘러싼 국가, 영화계, 관객의 정치적인 역학을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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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Culture and Sports > Creative Writing and Media Studies in Division of Culture Creativit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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