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사행가사 <임자연행별곡>의 창작 맥락과 문학적 특질<Imja-Yeonhangbyeolgok>'s creative contexts and literate features

Other Titles
<Imja-Yeonhangbyeolgok>'s creative contexts and literate features
Authors
김윤희
Issue Date
2010
Publisher
한국시가문화학회
Keywords
Imja-Yeonhangbyeolgok; the 18th century; Envoy' s Ga-sa; Leeuihyeon; Sino-Centralism of Choson dynasty; recognition of Northern old territory; yeongyeong representation of cultural relics; refined literature; 임자연행별곡; 18세기 사행가사; 이의현; 조선중화주의; 북방 고토 인식; 연경 문물의 표상; 전아한 문학
Citation
한국시가문화연구, no.25, pp.73 - 108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시가문화연구
Number
25
Start Page
73
End Page
108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17797
ISSN
2466-1759
Abstract
본고는 최초로 학계에 소개되는 사행가사인 <임자연행별곡>의 창작 맥락과 문학적 특질을 살펴 자료적 가치와 시가사적 의미를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작품에 대한 내재적 분석을 통해 작가가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 1669~1745)임을 알 수 있었으며 1732년(영조 8)에 사은사로 다녀온 연행 체험이 창작의 토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18세기 초에 창작된 <임자연행별곡>은 사행가사 문학에 대한 통시적 구도의 보완은 물론 시대적 변모 양상을 해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상당하다. 17세기 말을 기점으로 대청 관계가 안정되면서 조선은 자국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구심점으로써 ‘조선중화주의’를 지향하며 이를 대외 인식의 주요 지표로 삼게 된다. <임자연행별곡>에는 북방 영토에 대한 회고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 당시 지식인들이 자국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측면이 확인된다. 이는 중화 회복에 대한 염원으로 명분론이 대청 인식의 주요 기제였던 17세기 중반까지의 양상과 변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명분론의 관념성과 배타성이 약화되면서 연경의 문물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있는 현상이 <임자연행별곡>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 <임자연행별곡>은 이처럼 18세기 초 조선 지식인의 대청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동시에 이의현의 문예관과 국문 인식을 토대로 창작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의현은 영조대의 文衡으로 서인 노론계의 일원이었지만 老莊이나 諸子를 애호하는 등 동시대 다른 문인들에 비해 폭넓고 유연한 문예관을 견지했음이 확인된다. 연행 체험에 대한 연작적 한시도 많이 남겼으며 俗語에 대해서도 典雅한 사용이 전제된다면 그 쓰임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시각을 피력한다. 이러한 창작 맥락을 토대로 살펴본 <임자연행별곡>의 주요 특질은 문학적 전거의 활용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는 여정의 객관적 나열이 초래할 수 있는 심미적 환기의 단절을 방지하고 문학적 감흥을 배가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공식적 기록인 <임자연행잡지>와 비교해 본 결과 <임자연행별곡>은 시선의 유연성이 강화되어 사적 층위에서 경험과 공간을 인식하고 형상화한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17세기 중반 작품인 <장유가>는 중국에 대한 공간 인식이 명분론에 기반한 ‘한탄’의 정서로 수렴되는 반면 <임자연행별곡>의 경우 자국의 북방 고토에 대한 회고와 청나라 문물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시대 인식과 문학적 표상의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19세기 초 사행가사인 <무자서행록>과 비교해 보면 <임자연행별곡>에서 확인되는 연경의 문화적 풍경에 대한 관심과 어휘의 특성은 前兆的 표상으로서 의의를 확보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창작된 사행가사의 경우 낯선 문물과 이국적 풍속에 대한 관찰의 시선이 상당히 정밀한 층위로 변모하여 나열과 묘사의 편폭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행가사인 <임자연행별곡>은 18세기 전반기 대청 사행가사의 존재를 확인케 함과 동시에 공시적,통시적 측면에서의 연구 확장을 가능케 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 작품임이 분명해 보인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ETC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