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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시의 지향의식 분화Differentiation of Poetic Intension Appeared in Chinese Poetry in Modern Period

Other Titles
Differentiation of Poetic Intension Appeared in Chinese Poetry in Modern Period
Authors
심경호
Issue Date
2009
Publisher
한국시가학회
Keywords
한시창작론; 한시의 발전과 변질; 근세; 일제강점기; 전통주의자; 강화학파; 변법자강론자; 개화주의자;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theory of creation of classical chinese poetry; development and deterioration of classical chinese poetry; modern period;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tic occupation; enlightenment; nationalism; socialism; Ganghwa(江華) school
Citation
한국시가연구, v.26, pp.113 - 155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시가연구
Volume
26
Start Page
113
End Page
155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21491
DOI
10.32428/poetry.26..200905.113
ISSN
1226-5578
Abstract
본고에서는 근세 한시의 분화 양상을, 현실대응의 방식 및 주제사상과 관련하여 개괄했다. 개항 이후 지식인들은 현실세계의 격동에 반응하면서 자신들의 정서와 사상을 한시로 드러내었다. (1) 근세에 보수의 지향과 개화의 지향이 충돌하면서 각종 사상유파들이 분화되었다. 이 시기에 전통주의자들은 이념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 현실대응의 논리는 반외세 민족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따라서 그들의 한시도 그러한 복합성을 띠고 있다. 한편 강화학파의 학인들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고 우국의식과 절의의 정신을 시문으로 담아내었다. (2) 근세의 공간에서 변법자강론자와 개화주의자의 한시는 서로 상이한 정치관, 대외관을 지녔지만, 한시에서는 우국의 정신이 충만한 공통의 특성을 드러내었다. 다만, 변법자강론자들이 미래의 전망을 고전과 전통에서 찾은 반면에 개화주의자는 대동아론 등 그 시기에 수용된 국제정세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차이가 있다. 북촌 사대부 시단에서 두각을 나타낸 조면호의 경우도 격동기의 시국을 증언하기도 하고 경향 각지의 풍속과 민정을 죽지사 양식으로 묘사하기도 하면서 우국의 심정을 한시로 표출했다는 점에서 변법자강론자나 개화주의자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3) 일제강점기에는 협의의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에 속하는 지식인들이 국문문학의 가치를 발양하면서도, 여전히 전통적 시가 양식으로서의 한시를 통해 지적 관심과 현실참여의 의식을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학문과 교양의 바탕이 한문학에 있었기 때문에, 국문문학의 실험보다도 전통 한시 양식의 채용에서 깊이 있는 서정과 사색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4) 한편 일제강점기에 토착 지식인들이 자신의 지역사회를 소재로 하여 한시를 즐겨 창작하였다. 이들은 문집을 남기는 한편, 인근 지식인들과 시사를 결성하고 시회를 열어 정서적 공감을 이루고 지식층으로서의 분내를 지켰다. 한편 일제 때는 변절자로서 한시를 남긴 인물들이 상당히 많았다. 박영철은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방관적 지식인들이나 종속적 지식인들의 한시가 문집의 형태로 간행, 보급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한시는 전반적으로 쇠락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문집의 출판 사실을 기준으로 보면 현실에 대응하는 적극적 주제를 상실하고 형식적인 어휘의 나열로 전락한 음풍농월의 시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근세의 공간에서도 그보다 앞선 시기와 마찬가지로, 장편고시와 잡언의 악부가행 양식으로 삶의 복잡한 이면과 현실의 모순된 사실을 보고하는 한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현실 및 민풍을 단형의 형식으로 보고하는 죽지사 계열도 상당히 많이 나왔다. 하지만 점차 酬唱의 근체시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곧, 근대 이전의 전통 양식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적 지식인과 강화학파의 지식인, 개화파와 절충주의 지식인들은 전통 양식을 계승하여 우국의 의지와 현실에의 대응 의식을 시로 표출하였다. 하지만 지인 사이의 酬唱이 중시되고 嗜好의 동화를 의도하는 한시 창작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복잡한 양식보다는 간단한 양식을 선호하게 되어 갔다. 또한 典故의 사용에서는 한문고전을 재해석하는 지적 조작을 요구하기보다는 제한된 교양의 공유를 중시하게 되어, 전고를 표층적 지시어로 활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문학은 일제의 강점과 더불어 소멸된 것이 아니다. 한시는 민족주의의 문학으로 발전하거나 현실타협의 문학으로 변질되면서, 다양한 계보를 형성하면서 여맥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지성사와 한문학 연구는 1910년을 하한선으로 설정하는 관행을 돌파하여, 망국의 시기에 이루어진 한문학에 대해 그 부정의 면과 긍정의 면을 모두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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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Classical Chines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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