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개념을 통한 아이덴티티의 재편 논리 -도리이 류조(鳥居龍蔵), 최남선, 이하 후유(伊波普猷)를 중심으로-Logic of reorganization of identity through the concept of ‘Shaman’ —centered on Torii Ryuzo and Nam-sun Choi and Iha Fuyuu—
- Other Titles
- Logic of reorganization of identity through the concept of ‘Shaman’ —centered on Torii Ryuzo and Nam-sun Choi and Iha Fuyuu—
- Authors
- 전성곤
- Issue Date
- 2009
- Publisher
- 동아시아고대학회
- Keywords
- 샤먼; 도리이 류조; 최남선; 이하 후유; 동조론; 우주삼단론; shaman; Torii Ryuzou; Choi Nam-Sun; Iha Fuyuu; Identical ancestor; cosmology of third a grade; shaman; Torii Ryuzou; Choi Nam-Sun; Iha Fuyuu; Identical ancestor; cosmology of third a grade
- Citation
- 동아시아고대학, v.19, pp.355 - 380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동아시아고대학
- Volume
- 19
- Start Page
- 355
- End Page
- 380
- URI
-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21603
- ISSN
- 1229-8298
- Abstract
- 필자는 ‘민족적’ 아이덴티티의 문제를 ‘그러한 시대 상황에서의 창출된 개념’이라고 상정한다. 이러한 아이덴티티의 창출 논리는 여러 분야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蔵)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 특징을 살펴보려 한다. 도리이는 ‘인류학’이라는 이론을 ‘서구’로부터 받아들이고 이를 수용하면서 일본 인종․민족의 재발견을 시도하고, 국민통합에 필요한 국가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이시기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는 피억압민족으로 전락되면서 일본인 도리이 류조가 전파한 ‘근대적 학지(學知)’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도리이 류조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구도에 넣고 조선의 샤먼을 조사하면서, 동북아시아와 샤먼의 특징을 설명했다. 동아시아라는 상상의 세계가 현실적 ‘사실’로 호명되고, 이를 해석하는데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이 조선의 샤먼이었고, 그것을 일본의 신도와도 연결시켰다. 결국 신과 소통하는 ‘샤먼’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천(天)의 관념, 특히 ‘백’의 관념이 일본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와 연결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내러티브가 창출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순수한 토속은 ‘샤먼’이라고 규정되었고, 동북아시아 민족들의 공통적인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최남선은 ‘샤먼’을 하나의 ‘토속’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천 관념을 수용하여 다시 조선의 단군을 가시화시킨다. 단군의 위상이 전면적으로 부상하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상동적 위상을 확보하게 된다. 그것은 타자인 도리이가 발견한 내부의 샤먼을 통해 내부의 내부를 체현하면서 외부에게 저항이라는 담론을 재생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식민지지배체제에 있었던 오키나와의 지식인 이하 후유(伊波普猷)에게도 나타났다. 이하 후유는 도리이가 발견한 오키나와의 인종론을 활용하면서 오키나와와 내지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하 후유는 『오모로소우시』라는 노래집 분석을 통해 ‘오키나와 신화’와 일본신화’의 동일성을 강조하고, 오키나와의 조상이 일본에서 이주한 자들이라는 ‘일류동조론’을 철저하게 주장한다. 그것은 오키나와의 신화적 구조와 신관인 ‘기코에오호키미(聞得大君)’를 제시하면서 ‘노로(祝女)’라는 샤먼의 역할과 노로가 사용하는 ‘도구’를 통해 동일성을 증명했다. 이처럼 도리이 류조와 최남선, 이하 후유는 ‘국가의 신화 담론’을 창출해내는 ‘공식화된 공간’에서의 이데올로그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근대국민국가가 만들어내려는 인식의 ‘폭력’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모면할 수 없는 측면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상황속에서 민족의 신화를 둘러싼 ‘특수’와 ‘보편’의 모순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민족적 특징과 차이성을 주장하는 논리는 결국 ‘사상의 헤게모니’의 각축전이었고, 중층(重層)적 양상을 띠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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