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람진의 고딕적 상상의 지리: 「보른곪 섬」과 「시에라-모레나」에 나타나는 서유럽

Abstract

카람진은 18세기 후반 1년 반에 걸쳐 서유럽을 여행했는데 이 경험은 유명한 여행기의 질료가 되었다. 『러시아 여행자의 편지』에서 카람진은 코스모폴리탄의 면모를 드러내며 서유럽에 대해 러시아인으로서의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보편적 의견이다. 그러나 서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1793년에 쓴 두 소설을 보면 여행기에서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 발견된다. 본 논문은 유럽을 무대로 삼은 두 소설, 「보른곪 섬」과 「시에라-모레나」에서 카람진이 구사한 공간 활용 방식을 고찰한다. 두 소설은 같은 해에 쓰여졌고 서유럽을 공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그 외에도 고딕 소설 요소가 두드러진다는 점에 주목해 이 두 소설에 나타나는 고딕 양식과 서유럽이란 공간 간의 함수 관계를 추적한다. 이를 위해 우선 두 소설에 나타나는 고딕 소설의 모티프를 짚어보고 공간 배경의 특징과 의미망을 고찰한다. 흥미롭게도 카람진은 소설의 무대인 덴마크의 보른곪 섬과 스페인(시에라-모레나)에는 정작 가본 적이 없다. 상상으로 창조해낸 지리인 것이다. 카람진의 상상의 뿌리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고딕 소설로 작가는 직접 체험에 기대기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국적이고 고딕적인 공간을 창조해냈다. 상상과 고딕이 교접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이 두 소설에서 더욱 관심이 가는 사항은 카람진이 설정해 놓은 서유럽과 러시아 간의 대립 구도일 것이다. 카람진의 손에서 서유럽은 금기시 되는 행위가 자행되는 곳이며 열정이 서약을 깨고, 그 결과 파멸하는 곳으로 러시아와 대립항을 이룬다. 이 소설들에서 카람진은 서유럽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시도한다고 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작가가 향후 걸어갈 지적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