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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지식인과 顧炎武The Literati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Gu Yanwu

Other Titles
The Literati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Gu Yanwu
Authors
심경호
Issue Date
2008
Publisher
우리한문학회
Keywords
顧炎武; 日知錄; 經世學; 類書; 音韻學; 李圭景; 李德懋; 丁若鏞; Gu Yanwu; Ri Zhi Lu; jingshixue; a study of statecraft); leishu; phonology; Yi Gyugyeong; Yi Deokmu; Jeong Yakyong
Citation
漢文學報, v.19, pp.509 - 533
Indexed
KCI
Journal Title
漢文學報
Volume
19
Start Page
509
End Page
533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24581
ISSN
1229-4136
Abstract
顧炎武는 명말청초에 經世致用의 뜻으로 博學을 행한 考證學者이다. 고염무의 『日知錄』은 1695년(강희 34년) 潘耒가 간행한 32권본이 18세기 중엽의 조선에서 널리 읽힌 듯하다. 본고는 고염무의 저술을 인용한 몇몇 사례들을 통해서 조선 지식인들이 고염무의 학문을 수용하고 비판한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후기의 지식인은 地理考證과 歷史論에서 『日知錄』을 인용하기도 했고, 고염무가 주장한 경학과 사학의 竝進이라는 학문관에 동조하기도 했다. 또한 李圭景이 『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考證的 類書를 편찬하면서 여러 辨證說에서 『일지록』을 적극 활용한 예에서 잘 나타나듯, 類書 編纂과 博學에서 『일지록』을 빈번하게 인용하였다. 그리고 安鼎福은 1785년에 천주학을 비판하는 글을 작성하면서 고염무의 『일지록』을 인용해서 입론의 근거로 삼았다. 나아가 안정복은 『四書五經大全』의 評價와 관련해서 「四書五經大全」의 내용을 전부 인용하고 그 설에 공감했다. 한편 丁若鏞은 고염무의 經世的 學風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 그는 『經世遺表』 가운데 井田法에 대해 논하는 과정에서, 鄭玄 등이 訓詁는 通했으나 制度에는 엉터리가 매우 많았다고 지적하고 고염무의 「郡縣論」에 동조했다. 이에 비해 조선후기 지식인은 고염무의 音韻學에 대해서는 그리 깊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다만 金正喜는 「代權彝齋敦仁 與汪孟慈喜孫」에서 고염무의 음운학에 대해 언급하였다. 丁若鏞은 고염무를 많이 참조하였지만, 『일지록』의 저술 목적이 명성을 보존하려는 데 있었고 史傳에 있는 말을 뽑아 자기의 立論과 뒤섞었으므로 올바른 義例를 수립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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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Classical Chines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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