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독본류와 한글 문체의 형성

Abstract

일제 강점 이후 공적 교과서의 체재가 일본어 위주로 재편되면서, 민간 차원에서 조선어를 중심으로 편찬한 ‘독본(讀本)’류들이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독본’은 ‘모범’이 될 만하다고 여겨지는 글들이 묶여진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한글 문장의 형식을 전파하고 계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논문은, 191020년대를 대표하는 최남선의 시문독본과 1930년대를 대표하는 이윤재의 문예독본을 텍스트로 삼아, 그 시대에 드러났던 문체의 실제적인 양태와 그 책의 편찬자들이 도달하기 바랐던 문체적인 지향을 추출해내고자 하였다.시문독본은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혼종적인 텍스트들의 집합체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시문(時文)”이라는 개념은, 시문독본에 실린 작품(글)들을 통해 볼 때, ‘국한문혼용’을 의미한다. 국한문혼용은 한문의 문장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경우부터, 한글의 통사 구조를 유지한 채 부분 부분의 어휘들만을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국한문이 어떠한 양상으로 혼합되느냐에 따라 띄어쓰기와 문장부호 등도 그 존재 양태를 달리한다. 최남선이 도달하고자 했던 한글의 문체는, 한문의 구조에 기대지 않는 자연스런 한글의 통사를 바탕에 두고 한자어를 통해 우리의 어휘를 확충하고자 하는 방법이었다.문예독본은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들을 위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최남선의 경우처럼 한글의 통사 구조 안에 한자 어휘를 삽입하는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한문의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우리말로 사물과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930년대 들어 문학작품을 위주로 한 독본의 생산이 증가했던 데에는, 이처럼 문학적 글쓰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형상화(形象化)에 대한 욕구를 통해 한글 문장이 가지는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던 시대적인 지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시문독본과 문예독본에 나타난 한글의 문체는, 시간적으로 앞서는 시문독본의 국한문혼용에서 문예독본의 한글전용으로의 이행을 보여주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최남선과 이윤재가 상정했던, 그리고 이루려고 시도했던 한글의 문체는 동시대적으로 대립되었던 두 가지의 지향을 드러내는 것이다(한자 사용의 문제는 현재도 논란거리이다). 한글 문체의 다양한 상(像)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했으며, 무엇이 단절되고 계승되었는지, 그 단절과 계승은 무엇을 계기로 이루어졌는지 더욱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