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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민족운동으로의 계승The Succession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to the National Movement of Namwon Region

Other Titles
The Succession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to the National Movement of Namwon Region
Authors
유바다
Issue Date
2020
Publisher
전북사학회
Keywords
남원; 임실; 동학농민혁명; 3·1운동; 민족운동; Namwon; Yimshil; Donghak Peasant Revolution; 3·1 Movement; National Movement
Citation
전북사학, no.60, pp.275 - 298
Indexed
KCI
Journal Title
전북사학
Number
60
Start Page
275
End Page
298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1188
ISSN
1229-2001
Abstract
남원 지역은 동학농민군 지도자 金開南이 웅거했던 곳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동학농민혁명 연구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따라서 남원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에 대해서는 이루어질 수 있는 대부분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게다가 동학농민혁명 이후 남원 출신 동학교도의 활동 또한 南原郡宗理院에서 1924년에 펴낸 『殉敎畧歷』을 통하여 확인이 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국무총리 소속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기준으로 한 혁명 이후의 활동에 대한 추적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중심으로 국가보훈처에서 또한 공식적으로 선정한 독립유공자를 대조하여 남원 지역 동학농민혁명이 이후 민족운동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1894년 남원 지역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모두 126명이다. 이 중 『殉敎畧歷』 등에서 66명이, 『天道敎任實敎史』에서 27명이 발견된다. 그밖에 김개남 휘하의 참여자가 15명, 남원성 전투와 관련한 참여자가 12명 등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공식적으로 柳泰洪 1명이다. 다만 동학농민혁명 초기부터 활동하였던 그의 상징성을 생각해 볼 때 그가 남원 지역 3·1운동을 주도한 점은 동학농민혁명이 곧 민족운동으로 전화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殉敎畧歷』에 나오는 文璟錄과 林良淳도 3·1운동 참여로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서 3·1운동에 참여한 것이 확실한 李起東, 金鍾雄을 추가적으로 조사하여 독립유공자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이 본다면 1894년 남원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1919년 3·1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민족운동으로의 계승이 확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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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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