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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파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조선 통치Chosyu clique Terauchi Masatake and Japanese colonial rule

Other Titles
Chosyu clique Terauchi Masatake and Japanese colonial rule
Authors
이형식
Issue Date
2019
Publisher
호서사학회
Keywords
Terauchi Masatake; Chosyu clique; Yamagata Aritomo; Japanese Settlers in Colonial Korea; The Event of 105 People' Case;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슈파; 야마가타 아리토모; 재조일본인; 105인사건
Citation
역사와 담론, no.91, pp.5 - 52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와 담론
Number
91
Start Page
5
End Page
52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1514
ISSN
1226-8089
Abstract
본고에서는 조슈파의 리더인 데라우치의 조선통치구상을 대륙침략구상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살펴보았다. 데라우치는 식민지 총독에는 무관만이 취임할 수 있도록 규정한 식민지관제를 무기로 오쿠마 내각 성립 후 대만, 관동주에도 자신의 세력을 부식(扶植)시켜 일본 식민지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데라우치는 조선을 ‘육군의 독립영역’ 하에 두기 위해 일본 본국의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고 조선인뿐만 아니라 재조일본인, 외국인(선교사)을 억압하는 전제정치를 시행했다. 조선인 언론뿐만 아니라 재조일본인 언론에 대해서도 언론통폐합정책과 언론탄압을 강화했고, 거류지를 폐지하여 자치를 박탈하고 회사령을 통해서 일본 자본의 조선 유입을 제한했다. 또한 데라우치는 날조한 105인사건을 통해 신민회, 서북의 기독교신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교사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경무총감부, 검찰, 재판소 등을 동원하여 관련자의 검거, 조사, 재판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한편 데라우치의 조선통치정책은 대륙침략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데라우치는 대륙침략을 위해 철도·도로·항만의 건설, 교통·통신의 정비를 조선통치의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이로 인해 위생, 교육에 대한 투자는 소홀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이온지 내각, 제1차 야마모토 내각의 긴축재정, 행·재정정리 방침에 교통·통신의 정비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데라우치는 한국통감으로 부임하기 직전에 2개 사단 증설안을 가쓰라 내각에 제출하였고,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사이온지 내각의 대외정책, 중국정책,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면서 대륙침략과 조선통치 안정에 필수불가결한 조선사단 증설을 강력히 추진했다. 사이온지 내각이 사단 증설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자 우에하라 육군대신, 다나카 군무국장 등 육군 수뇌부를 움직여 내각을 붕괴시키고 스스로가 후계 내각의 수반이 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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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문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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