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 後期 月港 開港과 壬辰倭亂The Opening of Yuegang port and Imjin War(1592-1598)
- Other Titles
- The Opening of Yuegang port and Imjin War(1592-1598)
- Authors
- 조영헌
- Issue Date
- 2017
- Publisher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 Keywords
- 월항; 임진왜란; 해금; 해상; 마카오; 포르투갈; 예수회; Yuegang; Imjin war; maritime ban policy; sea merchants; Macao; Portugal; the Jesuit; The Opening of Yuegang port and Imjin War(1592-1598)
- Citation
- 史叢(사총), no.90, pp.83 - 126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史叢(사총)
- Number
- 90
- Start Page
- 83
- End Page
- 126
- URI
-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2331
- DOI
- 10.16957/sa..90.201701.83
- ISSN
- 1229-4446
- Abstract
- 최근 임진왜란(임진전쟁, 1592-1598)에 대한 재조명이 國內外的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이 전쟁이 동아시아적 맥락, 혹은 地球史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의미 있는 國際戰爭으로 새롭게 주목받기 때문이다. 점차 임진왜란이 戰爭이 發生하게 된 背景과 戰爭으로 야기된 結果는 一國史的 시각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동아시아적 혹은 국제적 맥락으로 파악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에서, 필자는 임진왜란의 국제적 맥락(혹은 계기)을 중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관계, 혹은 동아시아 海洋貿易史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였다.
‘嘉靖大倭寇’를 진압하면서 1567년 시행된 月港 開港의 결과 전개된 ‘海上貿易의 許容’과 ‘日本의 排除’라는 모순적 상황, 하지만 그 속에서 포르투갈, 예수회, 스페인 등 다양한 국제적 매개자를 통해 오히려 활성화되는 中-日 간의 교역이 결국 직접 교역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일본의 불만을 누적시켰고, 이러한 상황이 임진왜란이 발생하는 國際的 契機로 작용했다. 물론 戰國時代를 통일한 豊臣秀吉이 국내의 관심과 불만을 대외정복을 통해 해소하려는 허황된 욕구와 공명심이 전쟁의 요인이었음은 더 이상의 췌언을 요하지 않는 周知의 사실이다. 하지만 豊臣秀吉의 등장 이전부터 강했던 중국과의 교역 욕구는 월항 개항을 계기로 전개된 모순적 상황에서 강화되었고, 국제적 매개자들을 통해서 더욱 자극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豊臣秀吉을 비롯한 일본의 지도자들은 조선에 대한 침략전쟁을 통해 중국과 協商의 물꼬를 트려 하였고, 강화협상을 통해 기존 明 중심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貢市”를 줄기차게 주장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요컨대 임진왜란은 ‘海上貿易의 허용’과 ‘日本의 배제’라는 矛盾的인 상황을 강요하는 ‘중국의 독특한 해양정책’과 16세기 말 남중국해의 현실적인 운영원리가 담긴 새로운 관계성을 정리하려는 ‘일본의 顚覆的 팽창요구’가 충돌하여 돌출된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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