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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대의 勳臣 具致寬의 관직 생활과 특징Public Office Career of Gu, Chi-Gwan(具致寬), the Meritorious Official, and His Character in the Reign of Sejo of Joseon

Other Titles
Public Office Career of Gu, Chi-Gwan(具致寬), the Meritorious Official, and His Character in the Reign of Sejo of Joseon
Authors
강제훈
Issue Date
2017
Publisher
고려사학회
Keywords
Gu; Chi-Gwan; Gyeyu Jeongnan; Wonsang; Sejo; Seongjong; Politics of Joseon; Bureaucracy of Joseon; 구치관; 계유정난; 원상; 세조; 성종; 조선정치; 관료제
Citation
韓國史學報, no.69, pp.37 - 74
Indexed
KCI
Journal Title
韓國史學報
Number
69
Start Page
37
End Page
74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2403
DOI
10.21490/jskh.2017.11.69.37
ISSN
1229-6252
Abstract
이 글에서는 조선 초기 공신으로 영의정을 역임한 구치관의 관직 생활을 검토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통상 이 시기 정치 세력을 훈구와 사림으로 양분하여 살펴보는데, 구치관은 이러한 단순한 구분에 의해 분류하기에는 이질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관인이었다. 구치관은 계유정난 과정에서 세조에 협조했지만, 정난공신에 참여하지 못했다. 특히 예종 때, 院相으로서 핵심 관료의 한 사람이었음에도, 익대공신 지정에서 배제되었다. 그는 두 번 공신에 지정되었다. 세조가 즉위할 때, 좌익공신이었고, 죽은 다음 성종의 지시로 좌리공신에 포함되었다. 계유정난 이후 그의 생전에 있었던 네 번의 공신 책봉에서 그는 한 번 공신이 되었다. 그가 이 기간에 주요 관직자로 국왕 측근에서 활동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이례적이다. 이 기간에 신숙주와 한명회는 적개공신을 제외한 모든 공신에 책봉되었다. 신숙주 한명회를 견제하는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적개공신이 지정될 때, 구치관은 여기에 포함되지도 못하였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신숙주 한명회 등 당시 핵심 정치 세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들의 반대 세력에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치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성향은 두드러지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실록에 수록된 구치관에 대한 5회의 인물평을 분석하여 그가 공신으로서의 면모보다는, 공신의 일원이지만,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맡은 관직에 충실하고, 국왕으로 상징되는 공적 질서 체제의 유지와 안정에 더 집중하였던 관료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고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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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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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Jae Hoon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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