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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부세운영과 ‘향중공론’의 대두Tax Administrations in the 19th Century and the Rise of ‘Hyangjunggongron(鄕中公論)’

Other Titles
Tax Administrations in the 19th Century and the Rise of ‘Hyangjunggongron(鄕中公論)’
Authors
송양섭
Issue Date
2016
Keywords
Publicness(公共性); Hyangjunggongron(鄕中公論); taxation(賦稅); public property(公有財); public opinion(輿論); revolt(民亂).; 공공성; 향중공론; 부세; 공유재; 여론; 민란
Citation
역사비평, no.116, pp.148 - 175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비평
Number
116
Start Page
148
End Page
175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2634
ISSN
1227-3627
Abstract
19세기 ‘향중공론’의 대두는 공 담론의 전개과정 상 새로운 국면으로 향촌민이 지향하는 원칙과 관념에 반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현실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을 넘어 기존의 ‘위로부터의’ ‘공’과 별도로 향촌사회 내부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독자적인 여론 영역이 만들어지면서 사회적ㆍ정치적으로 점차 소구력을 얻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과의 관계에서 향중공론은 일정한 균형과 타협을 전제로 했지만 이를 왜곡하여 받아들이거나 소통이 막힐 경우 심각한 대립과 갈등이 초래되기 마련이었다. 향촌민의 대응은 소극적인 항의에서 극단적인 폭력사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될 수 있었다. ‘향중공론’은 국가주도의 공이 가지는 허구성을 폭로하는 한편 국법질서를 근거로 부세운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체성과 일상성이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 ‘향중공론’은 국가주도 ‘공’의 지향과 겹치면서도 상황에 따라 강한 저항성을 동반했으며 이는 민란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향촌민의 문제 제기는 주로 이서나 수령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사태가 악화될수록 중앙 권력의 ‘공’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스스로의 쇄신을 기대하기에 왕조의 지배 이념과 정치 현실은 지나치게 경직된 상태였고 민의 요구를 담아 사회모순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기대하기에도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국왕ㆍ국가 중심의 ‘공’은 이제 전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없었다. ‘향중공론’은 체제 모순의 일탈적 표출인 동시에 담론 주도세력의 독점적 지위에 균열을 가져와 종래와 다른 독자적인 ‘공’ 영역의 형성을 알리는 신호였다. 향중공론의 대두에 따른 ‘공’ 담론의 분기는 향촌민의 정치의식이 그만큼 성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공’ 자체의 정치적 상대성과 주도세력의 다극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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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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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Yang seop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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