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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점령기 北京의 주민조직과 그 유산Community organizations of Beijing during the occupation of Japan and its legacy

Other Titles
Community organizations of Beijing during the occupation of Japan and its legacy
Authors
윤형진
Issue Date
2015
Publisher
역사학회
Keywords
北京; 주민조직; 街巷公益會; 坊里; 保甲; 新民會; 町內會; Beijing; community organizations; jiexianggongyihui; fangli; baojia; Xinminhui; chōnaikai
Citation
역사학보, no.228, pp.385 - 415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학보
Number
228
Start Page
385
End Page
415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2839
DOI
10.16912/tkhr.2015.12.228.385
ISSN
1225-1615
Abstract
점령 초기의 北京 城區에는 郊區의 保甲과 같은 기층 주민조직이 없었다. 1939년이 되면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城區에서도 ‘街巷公益會’라는 명칭의 주민조직을 편성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일본 주둔군의 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즉 일본군 사령관이 일본의 町內會(Chōnaikai)에 해당하는 조직을 北京 城區에 조직할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區-分區-坊(fang)으로 이어지는 자치조직의 계통을 만들어지고, 자치조직의 감독 기관으로서 ‘區務監理處(quwujianlichu)’가 설립되었다. 개편 이후 坊보다 하급 조직인 里(li)가 편성되어 국가기구와 연결된 주민조직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지만, 里는 坊에 비하면 국가기구와의 긴밀한 연계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2년 무렵에 점령기 北京의 기층 주민조직과 관련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즉 新民會가 체제를 개편하면서 지역별 기층 주민조직의 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戰後 국민당은 北京에서 坊里를 保甲으로 대체했지만, 큰 틀에서 주민조직의 구조는 대체로 유지되었다. 이 시기 保甲長의 선발이나 書記의 임명을 보면 保甲 조직이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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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 Research Center > Asiatic Research Institut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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