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의 ‘혁명’ ㅡ 3·1운동 전야의 개념과 용법을 중심으로 ㅡThe Transformation of ‘Revolution’ in 1910s Korea
- Other Titles
- The Transformation of ‘Revolution’ in 1910s Korea
- Authors
- 권보드래
- Issue Date
- 2015
- Publisher
-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Keywords
- 3·1운동; 혁명; 공화; 신해혁명; 러시아혁명; 『매일신보』; 『학지광』; revolution; the 1st World War; Chinese (Xinhai) Revolution; Russian Revolution; Taehan-Maeilshinbo (大韓每日申報); Maeilshinbo (每日申報); Hakchigwang (學之光)
- Citation
- 개념과 소통, no.15, pp.47 - 8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개념과 소통
- Number
- 15
- Start Page
- 47
- End Page
- 82
- URI
-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016
- DOI
- 10.15797/concom.2015..15.002
- ISSN
- 2005-1492
- Abstract
- 3·1운동을 전후해 이 사건을 ‘혁명’으로 인식하고 명명하려는 시도는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해외의 독립운동가 사이에는 그 진영을 막론하고 해방기까지 ‘3·1혁명’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 바 있다. 이 글에서는 1910년대를 통해 ‘혁명’이 어떻게 이해되고 상상되었기에 그런 명명법이 가능했는지를 밝혀 보고자 했다. 한자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역성(易姓)과 개조(開祖)를 가리켰던 ‘혁명’이 ‘revolution’ 의 번역어로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의 일이다. 각국 근세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수용된 ‘혁명’이라는 단어는 그러나 1899∼1905년의 언론 통제를 통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가, 1905∼1910년에는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유통된바 있다. 후자의 시기에는 정체(政體) 변혁이 아니라 국가의 유지 자체가 급선무로 제시된 까닭이다. 1910년 식민화 이후에도 언론 공간이 압살되다시피 한 상황속에서 ‘혁명’이 온전히 발음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 시기는 1911년 중국 신해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과 1918년 독일혁명 등 세계적으로 혁명이 잇따른 시기였으며, 그렇듯 거대한 사건은 식민지 조선에도 전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신보』 등 관제 언론에서도 국제적 격변을 보도했고, 한반도 외부에서는 보다자유롭게 ‘혁명’이 토론되었다. 일본과 중국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 운동가들과의교류가 활발하게 실험되기도 했다. 도쿄 유학생들의 잡지였던 『학지광』은 그 자취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매체로서, 이 글에서는 『학지광』을 중심으로하여 1910년대의 ‘혁명’ 개념이 정치적 당대성과 자유주의적 포괄성 등을 축으로재조형되었음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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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s - 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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