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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수령 진휼론에 나타난 朱子賑法의 적용과 그 당대적 변용 — 『牧民心書』 賑荒條의 분석 —Dasan Jeong Yakyong’s Theory of Jinhyul based on Juja’s jinhyul Rule(朱子賑法) and its Modification of that period analysis of Mokminsimseo(牧民心書) Jinhwang(賑荒條)

Other Titles
Dasan Jeong Yakyong’s Theory of Jinhyul based on Juja’s jinhyul Rule(朱子賑法) and its Modification of that period analysis of Mokminsimseo(牧民心書) Jinhwang(賑荒條)
Authors
송양섭
Issue Date
2015
Publisher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Keywords
Jeong yakyong(丁若鏞); Mokminsimseo(牧民心書); Jinhyul(賑恤); Kwonbun(勸分); Juja(朱子); Jinbeob(賑法); Jurye(周禮); forehandedness(因時順俗); 丁若鏞; 牧民心書; 賑恤; 勸分; 朱子; 賑法; 周禮; 因時順俗
Citation
민족문화연구, no.68, pp.175 - 224
Indexed
KCI
Journal Title
민족문화연구
Number
68
Start Page
175
End Page
224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067
DOI
10.17948/kcs.2015..68.175
ISSN
1229-7925
Abstract
18세기 이후 성리학적 민본이념이 확산됨에 따라 그 실천행위로서 진휼책은 더욱 강조되어 갔다. 정약용의 진휼제 운영론은 당시 여러 갈래로 제기되던 진휼론의 흐름에 위치해 있으면서 『목민심서』 구성의 유기적인 부분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목민심서』의 진휼론은 중앙정부의 대비책과 별도로 지역사회 수령의 차원에서 취해야할 진휼과 이와 관련된 갖가지 조치가 체계적으로 개진되어 있다. 정약용은 우선 수령의 권한 내에서 가장 실효성있게 추진할 수 있는 방안으로 勸分을 꼽았다. 정약용은 권분대상자, 즉 ‘饒戶’ 선정의 구체적일 절차를 규정했고 이들은 경제력에 따라 무상으로 곡물을 내놓는 賑餼, 곡물을 대여하는 賑貸, 곡물을 염가로 방출하는 賑糶의 형태로 진휼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飢民은 소정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선정되어 정도에 따라 賑餼·賑貸·賑糶의 형태로 곡물을 공급받도록 하였다. 정약용은 公穀 중심의 公賑을 기본으로 勸分을 통해 확보한 곡물을 賑資에 혼합한 형태를 구상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촌락 내부의 공동체적 연망과 유대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진휼사업의 성패는 적절하고도 신속한 조치와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제한된 賑資를 효과적으로 분배함으로써 가급적 많은 飢民을 구제하는데 달려있었다. 정약용의 賑場運營論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賑場의 數와 그 운영을 위한 賑廳의 인력과 설비에 대해 상세히 규정하였다. 여기에는 당시 法典이나 事目의 규정을 적절히 수용한 위에 그 자신이 목도한 1809년과 1814년 흉황의 시행착오가 크게 작용했다. 광범위한 조사를 거친 끝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진제법으로 정약용이 내린 결론은 朱子의 賑法을 수용하여 19세기 초 조선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朱子賑法이야말로 정약용 진휼론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였다. 주자의 진법은 대략 ① 魚鱗圖, ② 紅·靑·黃圈, ③ 賑曆, ④ 賑牌, ⑤ 賑閽, ⑥ 賑旗, ⑦ 賑印, ⑧ 賑賞 등 8가지로 요약되는데 이는 鄕保의 향촌사회조직에 군대편제를 중첩시켜 진휼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제․관리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이러한 주자진법은 이미 당시 시험적으로 채택하여 시행하는 수령이 있었던 바, 정약용은 이를 검토하여 현실 속에서 보다 구체화하였다. 바로 ‘因時順俗’의 입장이었다. 『목민심서』에 개진된 진휼론은 정약용이 구상한 진휼·환곡제 개혁안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그리고자 한 거대한 국가․사회 개혁안의 중요한 부문으로 정약용 사상의 성격을 새롭게 평가할 단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약용의 수령진휼론은 周禮的 이상을 추구하면서 18세기 제도적 규정을 參用한 위에 公賑을 위주로 私賑을 보완하는 가운데 중국 역대제도 중 朱子의 賑法을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 받아들여 현실에 맞게 변용함으로써 당시 진휼제 운영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를 타개하려 했던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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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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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Yang seop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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