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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진시대 산동·강소지역의 농경Agricultural Practice of the Shandong and Jiangsu Province Areas during the Pre-Qin Dynasty Period

Other Titles
Agricultural Practice of the Shandong and Jiangsu Province Areas during the Pre-Qin Dynasty Period
Authors
이홍종石諾
Issue Date
2015
Publisher
한국고고학회
Keywords
선진시대; 산동성; 강소성; 용산문화; 악석문화; 초기농경; 양저문화; Pre-Qin Dynasty Period; Shandong Province; Yongshan Culture; Yueshi Culture; Early agriculture; Liangzhu Culture
Citation
한국고고학보, no.95, pp.32 - 63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고고학보
Number
95
Start Page
32
End Page
63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159
ISSN
1015-373X
Abstract
우리나라 초기농경문화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변지역과의 비교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필자는 강소성, 산동성, 요령성의 농경자료를 수집하여 한반도와의 관련 그리고 일본으로의파급 등 동아시아 초기농경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환황해권 농경유적에 대한 자료를수집하는 과정에서 농경 관련 자료가 풍부하고 벼농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강소성과 산동성의 유적을 먼저 정리해 보았다. 물론, 강소성 남쪽에 접해 있는 절강성에도 河姆渡유적을 비롯해 도작농경관련 자료가 많지만 벼농사 위주라는 측면에서 강소성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농경자료는 보고된 유적을정리하여 지역별 시기별로 나누었다. 주요 유적에 대한 규소체 분석이나 낟알 분석자료도 참고자료로서 제시하였다. 강소성의 주 농경은 기원전 5000년 전부터 벼농사 위주로서 다른 작물의 재배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이에 반해 산동성은 시기별로 작물의 비중이 달라지고 있어 농경방식이 다양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이른 시기인 후이기부터 주대에 이르기까지 조와 기장이 주요 작물로서 재배되었지만, 용산기에는 벼농사 비중이 조와 기장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러한 원인은 용산기에 접어들면서 기후가 온난해지고 물이 풍부해져 타 작물에 비해 수확량이 높은 벼농사가 선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용산기 이후가 되면벼를 대신하여 밀의 비중이 점차 높아져 주대부터는 주 식량원으로 자리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산문화의 몰락은 기후변동으로 인해 도작농경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낙후된 악석문화로 편입되거나 이주민의 발생을 촉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용산문화의 붕괴와 이주민의 발생은 주변 환황해권으로 파급되면서 요령 및 한반도 농경방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북지방계통의 각목돌대문토기가 한반도로 유입되고 이들이 벼농사를 영위하였다는 점은 점진적인 농경방식의 파급에 의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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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School > Department of Archaeology and Art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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