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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와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의 건설Augustus and the founding of Emerita Augusta

Other Titles
Augustus and the founding of Emerita Augusta
Authors
이지은
Issue Date
2014
Publisher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Keywords
아우구스투스; 히스파니아; 칸타브리아-아스투리아스 전쟁; 에메리타 아우구스타; 속주 도시; Augustus; Hispania; Cantabrian and Asturian Wars; Emerita Augusta; Provincial city
Citation
서양고대사연구, no.39, pp.71 - 114
Indexed
KCI
Journal Title
서양고대사연구
Number
39
Start Page
71
End Page
114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469
DOI
10.20975/jcskor.2014..39.71
ISSN
1229-4837
Abstract
기원전 27년 1월, 아우구스투스와 원로원 의원들은 로마의 속주를 앞으로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원칙에 합의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상징적인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진정한 제국의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변경지역에서 로마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광대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도록 속주를 재정비하는 것이 아우구스투스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들 중에 하나였다. 이 글에서는 아우구스투스의 기원전 26~25년 히스파니아 서북부 정복과 새로운 식민시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의 건설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검토해봄으로써 권력과 체제의 확립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투스가 속주에서 실제로 어떠한 정책과 활동들을 펼쳤는지 고찰해보려고 한다. 악티움 해전이 제국의 동쪽을 정복한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을 상징하는 전쟁이었다면, 기원전 26~25년의 칸타브리아-아스투리아스 전쟁은 제국의 서쪽이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완벽하게 평정되었음을 상징했다. 칸타브리인들이 일으킨 반란과 오랫동안 불안정한 상태에 있던 이 지역을 완전히 평정하고자 아우구스투스는 직접 출정했고, 평화와 안정이 확립된 이후, 이 지역의 지하자원, 특히 금광을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서 광산의 개발과 도로망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종결되자, 아우구스투스는 히스파니아 서남쪽 아나스 강 주변 지역의 토지를 제대한 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이곳에 정착시켰다. 기원전 25년부터 시작된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의 건설로 아우구스투스는 퇴역병사들을 위한 정착지 마련과 향후 속주통치를 위한 중요한 거점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베리아 반도 서부지역의 남북 동서를 잇는 도로망의 중심에 위치하여 주변 지역과 소통이 용이한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된 에메리타 시는 로마문화의 전파와 속주의 통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에메리타 시의 건설은 전쟁의 승리가 가져온 평화가 영구히 정착되고, 이 지역 전체가 로마의 방식으로 통치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선택과 결정은 이후 히스파니아 속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들의 시작점이자, 기준점이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그의 권력과 지배체제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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