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과제Archaeological Survey Results of Achasanseong Fortress and Remaining Problems

Other Titles
Archaeological Survey Results of Achasanseong Fortress and Remaining Problems
Authors
최종택
Issue Date
2014
Publisher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Keywords
아차산성(峨嵯山城); 아단성(阿旦城); 아차성(阿且城); 백제(百濟);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한성(漢城); 북한산성(北漢山城); Achasanseong fortress; Adanseong; Achaseong; Baekje; Koguryo; Silla; Hanseong; Bukhansanseong fortress
Citation
史叢(사총), no.81, pp.3 - 36
Indexed
KCI
Journal Title
史叢(사총)
Number
81
Start Page
3
End Page
36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475
DOI
10.16957/sa..81.201401.3
ISSN
1229-4446
Abstract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峨嵯山城은 百濟의 阿旦城에 비정되며, 『三國史記』에 따르면 286년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396년 高句麗가 아단성을 공취한 적이 있으며, 475년 고구려가 漢城을 공함할 당시 백제의 蓋鹵王을 아단성 아래에서 참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전한다.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1994년에 시작되어 1999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현재까지의 조사 성과를 종합해 보면 아차선성은 둘레 1,038.58m의 포곡식산성이며, 평면 형태는 부정육각형이다. 성벽은 다듬어진 석재를 사용하여 내외협축으로 축조하였으며, 축조 당시의 높이는 7~8m 가량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바깥쪽 기저부에는 별도의 보축 성벽을 축조하였는데, 이는 5세기 후반 이후의 신라성에서 주로 보이는 기법이다. 문지는 남쪽과 동쪽에서 확인되는데 동문지는 현문식이다. 성내부에서는 여러 기의 건물지와 우물 및 저수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현존하는 성벽의 축조시점은 7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며, 9세기 중엽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출토된 명문기와를 통해 볼 때 아차산성은 7세기 전반이후 신라의 北漢山城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차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서 현존하는 아차산성과 관련된 몇몇 사항에 대해서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조사가 지표조사나 시굴조사 등 제한적인 것이어서 아직까지 아차산성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특히 초축 시점과 백제의 아단성으로 기능할 당시의 모습, 고구려의 한성공함 당시와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할만한 자료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향후 조사를 통하여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 밝혀질 것을 기대한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 Department of Archaeology and Art History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Choi, Jong Taik photo

Choi, Jong Taik
고고미술사학과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