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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太學의 설립과 정비 과정The Establishment of Paekche’s T’aehak(太學) and Its Reorganizations

Other Titles
The Establishment of Paekche’s T’aehak(太學) and Its Reorganizations
Authors
박현숙
Issue Date
2014
Publisher
역사교육연구회
Keywords
백제 교육제도; 태학; 진법자 묘지; 근초고왕; 무령왕; 오경박사; Paekche’s educational system; T’aehak; The memorial inscription of Chinbŏpcha; King Kŭnch’ogo; King Muryŏng; Doctors of the Five Classics
Citation
역사교육, no.132, pp.105 - 129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교육
Number
132
Start Page
105
End Page
129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483
ISSN
1225-0570
Abstract
백제 교육기관의 명칭이나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그 동안 명확히 말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관련 사료가 부족하여 관학의 정확한 명칭이나 그 교육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에 중국에서 백제 유민인 陳法子의 墓誌가 소개되면서, 백제 위덕왕 시기에 官學으로서 ‘太學’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태학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백제사의 발전과정과 관련하여 파악해 볼 수 있다. 관학이 출현할 수 있는 중앙집권화의 확립과 관료체제의 성립, 그리고 유교를 통치원리로 하는 역사편찬의 시기가 近肖古王代이므로, 이 때에 태학이 설립되었다고 생각된다. 근초고왕대에 설립된 태학에서는 博士가 공식적인 제도상의 敎授官으로서 弟子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리고 백제 武寧王과 聖王代에는 倭國에 五經博士를 주기적으로 파견하였다. 이는 백제에서 태학 교육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무령왕대에 오경박사제가 마련됨으로써 백제의 유학 연구와 교육은 심화되고 전문화되었다. 또한 태학을 확충됨에 따라 學官의 수도 증가하였을 것이다. 백제 사비시기에 태학은 행정부서인 22部 가운데 의례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司徒部 안에 편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백제의 국가체제가 정비ㆍ발전되고, 유학 수준이 성숙해짐에 따라서 이에 대한 수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백제에서는 관학 기관인 太學을 근초고왕대에 설립하였으며 이후 정비해 나감으로써, 관료군 양성 등 전문 인재에 대한 교육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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