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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의 書院觀에 대한 철학적 해명A Philosophical Elucidation on T'oegye Yi Hwang's View of the Confucian Academies

Other Titles
A Philosophical Elucidation on T'oegye Yi Hwang's View of the Confucian Academies
Authors
김형찬
Issue Date
2014
Keywords
T’oegye Yi Hwang; the Confucian academy (Sŏwŏn); Korean Confucianism; tao-learning; the ceremonial rite; the civil service exam (Kwagŏ);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서원(書院); 한국유학; 제향(祭享); 도학(道學); 과거(科擧)
Citation
퇴계학보, no.136, pp.99 - 126
Indexed
KCI
Journal Title
퇴계학보
Number
136
Start Page
99
End Page
126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492
ISSN
1225-4398
Abstract
조선시대 서원의 역사에서 退溪 李滉(1501~1570)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조선의 서원은 周世鵬(1495~1554)의 白雲洞書院 건립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서원의 역할과 의의를 재천명하여 조선 서원의 발전 방향을 세우고, 서원이 국가의 공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서원의 공적 위상을 확립한 것은 바로 퇴계였다. 이 글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하여 퇴계의 書院觀에 관해 철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재검토한다. 첫째, 퇴계가 서원의 기능 중 교육과 함께 祭享을 중시하게 된 것은 서원들의 건립과정에서 제향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 외에도, 天命·上帝에 대한 ‘종교적’ 敬畏의 자세를 강조하고 학문의 기본자세로서 敬을 중시했던 퇴계의 공부·수양론과 연관해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퇴계는 과거공부에 몰두하는 것을 비판했지만, 內聖外王이라는 유학 또는 성리학의 궁극적 목적에 비추어볼 때 과거공부와 도학공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퇴계는 사적인 利를 추구하는 것은 반대하였지만, 義를 추구하는 가운데 그 義에 대한 和應으로서 얻어지는 利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학 연마의 결과로서의 관직 진출까지 반대한 것은 아니다. 셋째는 퇴계의 서원 건립 운동이 국가 차원의 정치를 포기하고 향촌 단위의 정치로 입장을 전환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관직을 물러나 향촌에 머무는 현실적 처지에서는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진리의 성전으로서 서원을 세움으로써 理一分殊的 理가 군왕의 마음으로부터 향리까지 관철되는 중요한 거점으로서 서원을 자리매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서원을 통해 현실 권력을 견제하고 공론을 형성하며 인재를 양성해 중앙정계와 향촌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서원 건립 운동을 향촌 차원의 일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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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Philosoph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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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young chan
문과대학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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