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古朝鮮과 齊의 해상교류와 遼東Old Joseon and Qi’s Maritime Exchange and Liaodong

Other Titles
Old Joseon and Qi’s Maritime Exchange and Liaodong
Authors
박대재
Issue Date
2014
Publisher
고려사학회
Keywords
古朝鮮; 發朝鮮; 齊; 燕; 貊國; 『管子』; 斥山; 文皮; 遼東; 山東; Old Joseon(古朝鮮); Pal-Joseon(發朝鮮); Qi(齊); Yan(燕); Maekguk(貊國); Guanzi(管子); Chishan(斥山; Mountain Chi); spotted leather(文皮); Liaodong(遼東); Sandong(山東)
Citation
韓國史學報, no.57, pp.7 - 41
Indexed
KCI
Journal Title
韓國史學報
Number
57
Start Page
7
End Page
41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504
ISSN
1229-6252
Abstract
『管子』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發朝鮮)과 중국의 관계는 기원전 7세기 무렵 춘추시대 齊와의 교류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관자』에 전하는 고조선 기록은 춘추시대의 사정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제와 발조선의 교류는 산동반도 북부 東萊와 요동반도 남단 老鐵山을 연결하는 해상의 廟島列島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춘추시대 산동반도 東萊지역은 齊國과 적대 관계에 있던 萊國의 영역이었다. 동래지역이 제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은 춘추시대 말기인 齊 景公 때(기원전 547~490년)이다. 따라서 기원전 7세기 춘추시대에 齊가 동래지역을 경유해 해상으로 발조선과 교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齊와 교류하였던 發朝鮮은 문피의 산지로 유명하였는데, 제와의 교통로를 고려할 때 遼東의 千山 산간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 설에 따르면 『爾雅』의 斥山은 문피 산지가 아니라 문피가 중국에 수입되던 海口로 登州 文登縣 斥山(赤山)에 비정된다. 하지만 고대의 해로상 춘추전국시대 문등현 지역이 조선과의 교류에서 해구가 될 수 없다. 문등현 지역이 해구로 기능한 것은 황해중부횡단항로가 본격 이용되기 시작한 7세기 후반 이후이다. 『이아』의 斥山은 문피의 산지로 발조선 쪽의 지명이며, 그 위치는 산동지역과 해로로 연결되는 요동반도 지역에 위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관자』의 주요 내용은 齊의 稷下學宮이 흥성했던 宣王・湣王 시기(기원전 319~284)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기원전 282~280년 燕이 朝鮮의 ‘서방’ 즉 요동지역의 發朝鮮(貊國)을 침공하여 齊와의 해상교류가 단절되기 직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산동반도 齊와 요동반도 發朝鮮이 해상 교류하였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이후~기원전 3세기 초일 가능성이 높으며, 당시 발조선의 특산품인 文皮가 齊에 알려지면서 『管子』에 채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Liberal Arts > Department of Korean History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Park, Dae jae photo

Park, Dae jae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