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식민도시’ 청진 발전의 실상The Realities of ‘Colonial City’ Cheongjin under Japanese Occupation
- Other Titles
- The Realities of ‘Colonial City’ Cheongjin under Japanese Occupation
- Authors
- 송규진
- Issue Date
- 2013
- Publisher
- 한국사학회
- Keywords
- Cheongjin; colonial city; railroad construction; sea routes; harbor construction; water supply and drainage; discrimination; 청진; ‘식민도시. 철도부설; 항로개설; 축항; 상하수도; 민족차별
- Citation
- 사학연구, no.110, pp.327 - 390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사학연구
- Number
- 110
- Start Page
- 327
- End Page
- 390
- URI
-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599
- ISSN
- 1225-133X
- Abstract
- 청진은 러일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을 수송하기 위해 철도가 부설되면서 새로 형성되었고 1944년에는 인구가 조선에서 네 번째로 많은 도시가 될 만큼 팽창한 대표적인 ‘식민도시’이다. 청진이라는 지명도 일본군이 작명한 것이다. 러일전쟁이후 민간인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청진에서는 식민권력이 일본인회나 청진상업회의소 설립을 독려할 정도로 일본인단체와 식민권력이 밀착되었다. 식민권력의 비호를 업고 청진의 일본인 세력은 여러 사안에 대해 일본정부를 비롯하여 일본제국의회, 총독부 등에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로비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다른 지역과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지역현안을 해결하고자 했다. 좌절과 승리를 맛본 이런 노력을 통해 청진의 발전을 이끌어 낼 전기가 마련되었다.
청진은 상권을 동북만주까지 확대하기 위해 철도부설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함경선과 길회선이 개통하는 데 일조했다. 철도부설과 함께 청진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항로개설을 들 수 있는데, 일본정부가 재정상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도 끈질긴 로비를 통해 직통명령항로로 지정받을 수 있었다.
청진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난개발로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축항공사를 시행했다. 또한 시가지계획에 따라 가로망, 구획정리, 주택지, 공업지 등을 정비했다. 이밖에도 도시민의 생활을 위해 기본적인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했다. 인구증가는 경제규모의 확대를 동반했고 청진의 경제는 비약적 성장을 거듭했다. 대륙침략 이후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만주수출이 증대되고 이후 ‘대륙전진병참기지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청진은 ‘북선루트’를 통해 식료품의 공급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시형성초기에 청진에는 공업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나 대륙침략으로 북부조선의 중요성이 제기되면서 일본독점자본이 진출하여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다. 그러나 도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만큼이나 ‘식민도시’ 청진은 심각한 민족차별의 사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타 식민도시와 마찬가지로 청진개발의 주체와 수혜자는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이는 교육 차별로 이어져 1937년에는 ‘친일적인’ 조선인 부회 의원들마저 집단적으로 사퇴서를 제출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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