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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鄕村 知識人의 自我 構成 : 存齋 魏伯珪의 경우The Self Configuration of Local Literati in the eighteenth century of Joseon : Focused on the case of Wi Baek-Gyu

Other Titles
The Self Configuration of Local Literati in the eighteenth century of Joseon : Focused on the case of Wi Baek-Gyu
Authors
김문용
Issue Date
2013
Publisher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Keywords
Absence of ego; Presence of ego; Subjectivity; Obligation for the world; Local movement; Lineage; Patriarchy; 無我論; 有我論; 主體性; 天下己任; 鄕村運動; 宗族; 家父長制
Citation
민족문화연구, no.61, pp.143 - 170
Indexed
KCI
Journal Title
민족문화연구
Number
61
Start Page
143
End Page
170
URI
https://scholar.korea.ac.kr/handle/2021.sw.korea/133678
ISSN
1229-7925
Abstract
魏伯珪(1727-1798)는 經世에 관심을 둔 ‘實學者’이자 한글 詩歌를 남긴 문학가이고, 老論 湖論系 학설을 계승한 성리학자였다. 그는 중년 이후 三僻(地僻・姓僻・人僻)으로 대변되는 落拓 환경으로 말미암아 과거를 단념하고 고향에 은거하여 躬耕․讀書를 실천하고 향촌 운동에 종사하였다. 이 글은 그가 自我를 어떻게 이해 또는 구성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18세기 조선 향촌 지식인의 존재 양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목표를 둔다. 위백규는 불교․도가의 무아론과 대비하면서 자아에 대한 자신의 기본 입장을 私心과 放心의 사이, 즉 유아론과 무아론을 병행하는 데 위치시킨다. 강조점은 무아론보다 유아론에 두어지는데, 이는 일상적 욕구충족 활동이나 윤리적․사회적 실천을 그 주체 수립의 측면에서 근거지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게서는 무아론에 대한 부분적 긍정 역시 실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불교․도가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에게서 실천적 주체로서의 자아를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향촌에 대한 책임 즉 鄕村己任 의식이었다. 이것은 社講會와 家中四時會 등을 통한 향촌 운동으로 구체화되었지만, 당시 강화되어 가던 宗族秩序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의 향촌 운동은 宗族 중심적 성격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당시 종족 운동의 지침이 된 가족윤리는 강력한 가부장 의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가부장 의식은 효를 향촌윤리로 확장하려는 노력 등을 통해, 종족적 배타성을 극복하고 향촌의 공공성에 다가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주체성의 자각’은 근대적이기보다 통시대적인 현상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위백규의 사례는 전근대인들의 자아 구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적 시각의 도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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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Moon yong
민족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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